고 변희수 전 하사가 지난해 3월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군인권센터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며 밝게 웃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성전환 수술 뒤 군에서 강제 전역을 당한 고 변희수 전 하사가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낸 전역 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7일 승소했다. 군이 전역 처분 사유로 삼은 심신장애 여부를 판단할 당시 변 하사의 성별이 여성이었던 만큼, 남성의 신체를 기준으로 장애가 있다고 보고 강제 전역을 시킨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지극히 상식적인 판결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판결이 나오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사이 변 전 하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연된 정의는 더 이상 정의가 아니며, 인권을 보장하는 데 ‘나중에’는 없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변 전 하사는 육군에서 복무 중이던 2019년 11월 성전환 수술을 한 뒤 군에 복귀했다. 그는 여군으로 계속 복무하기를 희망했지만, 육군은 지난해 1월 심신장애를 이유로 강제 전역을 시켰다. 변 전 하사가 법원에서 진행 중인 성별 정정 허가 신청 결정이 나올 때까지 전역 심사를 연기해달라고 요청하고 국가인권위원회도 그의 긴급구제 신청을 받아들여 심사 연기를 권고했지만, 군은 이런 요구조차 묵살했다. 군에서 쫓겨난 뒤 1년여간 그는 천직이라 여겼던 군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다. 몇차례 기자회견을 열어 강제 전역의 부당함을 알리고 육군본부에 인사 소청을 냈다. 소청이 기각되자 지난해 8월에는 행정소송을 냈다.
좀 더 일찍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지만 군은 철저히 외면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지난해 7월 한국 정부에 “강제 전역 조처는 성 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국제인권법에 위배된다”는 의견을 낸 데 이어, 국가인권위도 12월 육군에 전역 처분을 취소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제도를 정비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군은 요지부동이었다. 변 전 하사에게는 이런 현실이 까마득한 벽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죽음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 혐오가 빚어낸 ‘사회적 타살’로 봐야 한다.
강제 전역 처분이 이뤄진 뒤 624일 만에 승소 판결이 나왔지만, 이 소식을 가장 기다렸을 변 전 하사는 지금 세상에 없다. 군이 지난해 말 국가인권위의 권고만 수용했더라도 그는 기갑병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군당국은 누구보다 군을 사랑했던 한 군인의 삶을 앗아간 데 대해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반성하기 바란다. 항소 포기가 그 첫걸음이다. ‘차별 없는 군대’를 만들기 위한 제도 정비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