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처음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가 신체 훼손을 이유로 강제전역 조처를 당한 변희수 전 육군 하사가 2020년 3월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 공원을 산책하고 있다. 당시 그는 군의 조처가 부당하다며 인사 소청을 신청했으며,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계획이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법원이 육군의 강제 전역 처분을 취소하면서, ‘트랜스젠더 여군’으로 군 복무를 하고 싶어했던 고 변희수 전 하사의 생전 바람이 일부나마 뒤늦은 결실을 얻었다. 법원은 전역심사 당시 변 전 하사가 이미 ‘여성’이었으므로, 그를 ‘남성’으로 보고 전역 처분한 군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적시했다.
하여 변 하사가 생존해 있었다면 ‘원대 복귀’할 수 있었을까? 답 대신 재판부는 트랜스젠더 군인에 대한 복무 지침 등이 누락된 한국 군 제도의 ‘공백’까지 법원이 메울 수는 없다며 ‘과제’도 함께 남겼다. 변 전 하사의 뜻에 지지를 보내온 시민사회와 법조계에서는 “트랜스젠더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군인’으로 살고 싶을 변 전 하사의 후임들을 위해서라도 군과 우리 사회가 제도의 공백을 메울 때”라고 입을 모았다.
법원 “변희수 하사는 전역심사 당시 남성 아닌 ‘여성’이었다”
변희수 전 하사는 생전에 성전환 수술 후 ‘여군’으로 일하고자 했다. 이번 법원 판단 역시 2020년 1월 전역심사 당시 변 전 하사의 성별을 ‘여성’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변 전 하사는 전역심사 당시 이미 ‘여성’이었기 때문에, 성전환 수술로 인한 신체적 변화를 ‘남성의 신체 일부 훼손’으로 보고 심신장애 3급의 전역사유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린 육군본부의 판단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히 법원이 변 전 하사의 성별을 판단할 때 주민등록상 성별(남성)보다 실질적인 성별 정체성(여성)을 기준으로 삼은 건 주목할 만하다. 박한희 변호사(희망을만드는법 대표)는 “한 개인의 실질적인 성별 정체성은 주민등록상 번호라는 ‘형식’이 아니라 ‘실질’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짚었다.
법원은 변 전 하사의 성별을 ‘여성’이라고 판단한 근거로 크게 세 가지를 들었다. 현행 한국의 법체계가 성전환 수술을 통한 성별이 정정을 허용하고 있고, 성전환 수술을 마친 변 전 하사의 성별은 ‘여성’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나아가 변 전 하사의 성별정정 신청이 전역심사 후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는 점 등이다. 전역심사 당시 서류상 성별이 ‘남성’이라 하더라도 이미 실질적으로 ‘여성’이었고 이를 군도 변 전 하사의 보고로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역심사 역시 ‘여성’이라는 성별을 기준으로 이뤄졌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어떻게 보면 애써 군이 부인해왔던 변 전 하사가 ‘여성’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법원이 교정해준 판결”이라고 의미를 짚었다.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3월27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연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는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공동행동’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들이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분홍·하늘·흰색 우산 들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변희수 하사 떠난 후에도 ‘트랜스젠더 군인’ 존재는 ‘투명인간’
다만 법원이 변 전 하사처럼 복무 중 성전환을 한 ‘트랜스 여성’의 군 복무가 가능한가에 대한 판단까지 내린 것은 아니다. 법원은 “변 전 하사와 같이 남군으로 입대해 군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받아 여성이 되는 경우, 여성으로서 다른 심신장애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 현역복무에 적합한지 여부, 현역복무를 허용할지 여부 등은 국가 차원에서 입법적·정책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 판결이 변 전 하사를 ‘남성’으로 보고 전역심사를 한 군의 처분이 잘못되었다고 결론 내린 것이지, 변 전 하사를 ‘트랜스 여성’으로 봤을 때 군 복무를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판단까지 내린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군이 변 전 하사를 여성으로 보고 전역심사를 진행했다면 결론이 달라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을 통해 ‘트랜스젠더 군인’의 존재를 누락해온 한국의 현행 징집제도와 군 복무제도의 ‘맹점’을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군인 선발 기준인 ‘질병, 심신장애의 정도 및 평가 기준’은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성 주체성 장애’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복무 중이거나 복무를 희망하는 트랜스젠더 군인에 대한 지침이나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 변 전 하사처럼 복무 중 성전환을 택한 군인에 대한 규정도 없다. 군이 변 전 하사의 전역을 결정하면서 군인사법 시행규칙의 ‘음경 상실·고환결손’ 등 심신장애를 끌어들인 이유다.
박한희 변호사는 “전역 처분이 취소된 것 자체는 너무 당연했지만, 그럼 이걸 바탕으로 트랜스젠더가 어떻게 군 복무를 해야 되는 건지,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가진 상태에서 군 복무를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제도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군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하고 복귀해 여군으로 복무를 이어가고 싶다고 밝힌 육군 변희수 하사가 2020년 1월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성소수자 군인들이 차별받지 않는 환경에서 복무했으면 한다. 성정체성을 떠나 이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될 기회를 달라”고 호소한 뒤 울먹이며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국방부, 트랜스젠더 군 복무 관련 용역 준비 중…“연구용역 거쳐 전면허용한 미국 사례 참고해야”
국방부는 연내 트랜스젠더 군 복무 관련 연구용역에 착수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7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국방부는 트랜스젠더 군 복무 관련 용역을 한국국방연구원(KIDA)에 맡기거나 국방부 외부에 위탁하는 방안을 놓고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지난 3월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성전환 수술 비용 지원에 관한 연구가 진행됐는지 묻는 질의에 “아직은 없는데 이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바 있다.
미국의 사례는 참고할만하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6년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한 바 있다.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군과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실무검토 그룹을 구성해 6개월 연구한 끝에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가 군대의 효율성과 기동성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랜스젠더의 군 신규 입대를 중단시켰지만, 후임인 바이든 대통령이 올 초 재차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김형남 사무국장은 “한국도 타당성 조사의 첫발을 뗀 만큼, 향후 연구용역에서 미국이 진행한 실무 연구 사례를 참고해 트랜스젠더 군인들의 복무 문제에 대해 체계적인 판단을 내릴 때가 됐다”고 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