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17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관위원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부실 관리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요구를 받아온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17일 사실상 사퇴를 거부했다. 앞서 지난 5일 진행된 코로나 확진자·격리자 사전투표에서 선관위의 부실한 준비 탓에 큰 혼란이 빚어져 투표 마감이 4시간이나 지연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비판 여론이 들끓었지만, 그때는 선관위가 나흘 뒤에 있을 본투표 관리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어서 선거 뒤 노 위원장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봤다.
하지만 노 위원장은 이날 열린 선관위 전체회의에서 “선관위가 처한 현 상황에 대해 위원장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앞으로 더 선거 관리를 잘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대통령을 뽑는 중차대한 선거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선관위원장이 “앞으로 더 잘하겠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헌법기관의 장으로서 대단히 무책임한 태도다.
김세환 사무총장이 전날 사전투표 부실 관리 책임을 지고 사의를 밝혔다고 하지만 사무총장 사퇴로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전국 시·도 선관위와 중앙선관위 소속 상임위원 15명이 건의문을 내어 노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겠는가. 이들은 “대외적으로 선거에 대한 신뢰를 훼손시키고 대내적으로는 직원들에게 자괴감과 절망을 안겨준 점에 대해 상임위원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한다”며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 대외적인 신뢰 회복을 위해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와 거취 표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한변협도 17일 “민주주의의 꽃이자 국민 주권의 초석인 선거에서 부실과 혼란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지극히 엄중한 사태”라며 노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 모든 게 노 위원장이 자초한 일이다. 노 위원장은 사전투표 혼란이 벌어진 당일 주말이라는 이유로 출근을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불신을 키웠고 이후에도 합당한 해명과 사과를 하지 않았다.
개발도상국 등에 선진적 선거 관리 시스템을 지원하는 등 그 권위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온 대한민국 선관위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는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6월1일 치러지는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3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노 위원장은 국민에게 진솔하게 사과하고 물러나는 게 마땅하다. 그에게 지방선거 관리까지 맡길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