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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동성 군인 성관계 ‘처벌 남용’에 제동 건 대법 판결

등록 2022-04-21 19:01수정 2022-04-22 02:40

‘세계 커밍아웃의 날’인 지난해 10월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본소득당,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유니브페미 등 7개 단체 활동가들이 군형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세계 커밍아웃의 날’인 지난해 10월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본소득당,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유니브페미 등 7개 단체 활동가들이 군형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대법원이 사적 공간에서 상호 합의에 의해 이뤄진 동성 군인 간의 성관계에 대해서는 군형법상 추행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21일 판결했다. 동성 간 성행위 자체를 ‘추행’으로 보고 무조건 처벌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해, 헌법이 보장한 평등권 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취지다. 이는 기존 판례를 변경한 것으로, 최고 법원인 대법원이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 진일보한 판단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이날 군형법상 추행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아온 남성 장교 ㄱ씨와 부사관 ㄴ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들은 2016년 근무시간이 아닌 때 부대 밖에 있는 독신자 숙소에서 서로 합의하고 성관계를 했다. 그러나 이듬해 군수사기관에 의해 군형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진 ‘육군 성소수자 색출 사건’의 피해자 23명 중 2명이 이들이다. 당시 육군 중앙수사단의 ‘색출’ 과정에서 사생활 침해와 ‘아우팅’(성정체성이 강제로 알려지는 것) 협박 등 각종 반인권적 수사가 이뤄졌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대법원은 “동성 군인 간의 성행위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 합치에 따라 이뤄지는 등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추행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군대 내 성소수자들을 표적으로 하는 ‘처벌 남용’ 관행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법원은 특히 “동성 간 성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는 평가는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성적 지향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시대 변화상을 판단에 적극 반영한 것이다.

군형법상 추행죄는 동성애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고, 피해자가 없음에도 처벌을 하는 대표적인 인권침해 조항으로 꼽힌다. 미국의 군형법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 만든 조항이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2003년 연방대법원의 위헌 판결로 사라졌다.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위원회’ 등 국내외 인권단체들도 줄곧 폐지를 권고해왔다. 정치권이 더 이상 귀를 막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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