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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법 “동성 군인 ‘합의 성관계’ 처벌 못해”…군형법 판례 바꿨다

등록 2022-04-21 15:43수정 2022-04-22 02:42

유죄 선고 원심 뒤집고 고등군사법원으로 파기환송
“군인이라는 이유로 성적 자기결정권 과도하게 제한”
김명수 대법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영외, 근무시간 외 동성 군인간 성관계 처벌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하기 위해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영외, 근무시간 외 동성 군인간 성관계 처벌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하기 위해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성 군인이 사적 공간에서 합의 하에 성관계를 맺었다면 군형법의 추행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앞서 대법원은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남성 군인 간 성관계만으로 군형법상 추행죄가 된다는 취지로 판단했으나, 이번 판결로 군형법 판례도 바뀌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21일 군형법상 추행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아온 ㄱ씨 등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남성 군인 장교와 부사관인 ㄱ씨와 ㄴ씨는 2016년 9월과 12월 근무시간 외 영외에 있는 독신자 숙소에서 서로 합의해 성관계를 했다. ㄱ씨는 다른 남성 군인과 2016년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같은 행위를 하기도 했다. 이에 ㄱ씨 등은 군형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군형법 제92조의 6항에는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1심 재판부는 ㄱ씨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ㄴ씨에게는 집행유예 3개월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선고유예는 비교적 가벼운 범죄를 저질렀을 때 당장 형을 선고하지 않고 유예 기간이 지나면 선고를 면하게 하는 판결이다.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재판에 참여한 대법관 13명 가운데 8명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에 따라 이뤄지는 성행위가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군형법의 해당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들 대법관은 이어 “‘항문성교’는 이성 간에도 가능한 행위다. 현행 규정을 동성 간 성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규정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시대의 변화’도 이번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 대법관은 “동성 간 성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는 평가는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며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른 성행위를 한 경우를 처벌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시했다.

안철상·이흥구 대법관은 별개의견을 내놓았다. 두 대법관은 “다수의견 결론에 찬성한다”면서도 “이 규정이 보호하는 법익에 ‘성적 자기결정권’이 포함된다고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김선수 대법관도 별개의견을 내어 “해당 규정은 상대방 의사에 반해 항문성교 등을 한 행위자만을 처벌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수의견에 찬성한다”면서도 “상호 합의했을 때도 군기 침해 이유만으로 현행 규정을 적용해 처벌 여지를 남기는 해석은 문언해석 범위를 벗어나 허용될 수 없다”고 했다.

반면 조재연·이동원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이 규정은 강제성, 시간과 장소 등에 대한 제한 없이 남성 군인 사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처벌하는 규정이라고 봐야 한다”며 “다수의견 해석은 문언 가능한 범위를 넘어 법원에 주어진 법률해석 권한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행위에 관해 ‘그 자체로 처벌가치가 있는 행위가 아니다’라는 것을 선언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ㄱ씨 등을 지원해 온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대법원 선고 뒤 기자들과 만나 “대한민국에서 동성 간 합의된 성관계를 처벌하는 악법이 사라지게 됐다. 헌법재판소도 조속한 시일 안에 이 법과 관련된 위헌을 결정해, 부당한 차별로 전과자가 된 성소수자 군인들이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16년 군형법 제92조의 6항에 대해 헌법재판관 5:4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 5명은 “군대는 동성 사이의 비정상적인 성적 교섭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히 높으며, 상급자가 하급자를 상대로 동성 사이의 성적 행위를 감행할 가능성이 높아 이를 방치하면 군의 전투력 보전에 직접적인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했다. 반면, 나머지 재판관 4명은 “합의에 의한 음란행위는 군의 전투력 보존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형사처벌의 범위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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