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년5개월 만에 러시아를 방문했다. 곧 열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북-러 정상회담에서 북한과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를 무력화하는 ‘무기 거래’를 비롯해 전략적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반도와 국제 정세에 심각한 위험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10일 평양을 출발한 김정은 위원장의 전용열차는 12일 오전 러시아에 진입했다. 이날 러시아 대통령궁(크렘린)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며칠 안에 북-러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확인하고, 양국이 “민감한 영역”에 대해서도 논의하겠지만 그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러시아가 북한에 부과된 유엔 대북 제재를 불이행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북-러 밀착이 급속도로 강화되고 있다. 침공이 장기화하면서 무기 부족과 외교적 고립을 겪는 푸틴 대통령은 북한의 무기와 탄환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를 지렛대 삼아 러시아로부터 군사, 경제적 지원을 확보하고 전략적 위상도 강화하려 한다. 김정은 위원장의 이번 방러 수행단에는 군과 군 과학기술 분야의 핵심 인사들이 대거 동행했다. 북한이 무기와 탄환을 대규모로 제공하는 대신, 러시아가 북한이 원하는 정찰위성과 핵 추진 잠수함 기술 등을 실제로 제공할지가 한반도 정세에 매우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북·러 정상이 군사기술 협력 등을 과시하기 위해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등에서 회담을 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러시아가 북한과 무기를 거래하는 것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를 정면 위반하는 것이다. 국제 질서의 중요한 책임자가 되어야 할 안보리 상임이사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안보리 대북 제재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위험한 무기’ 거래에 나서려 하는 상황은 참으로 우려스럽다. 러시아가 위험한 선을 넘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한반도 주변 정세에 심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킬 분수령이다. 북-러는 무기 거래를 넘어, 합동군사훈련, 북·중·러 군사협력으로 나아가려는 신호도 보내고 있다. 냉전이 끝난 뒤 30년 동안 비교적 원만하게 유지되어온 한-러 관계는 큰 위기에 처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직접 공개적으로 언급해 러시아와 갈등을 고조시킨 대러 정책 등은 다시 점검해야 한다. 러시아와의 관계를 더욱 세심하게 관리하는 등 엄중한 정세에 신중하게 대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