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장 공백’ 사태가 현실화됐다.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이 3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지만, 후임자가 아직 임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기 공수처는 ‘기소 3건, 유죄 0건’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남겼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사 인력과 수사 경험 미흡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적임자가 와도 공수처를 본궤도에 올려놓을까 말까 한데, 정부·여당은 ‘윤심’을 업은 함량 미달의 후보를 공수처장에 추천하려고 떼를 쓴다. 공수처의 정상화를 바라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김 처장이 이임식에서 “성과가 미미하다는 비난을 많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듯 공수처의 성적은 초라하기만 하다. 직접 기소한 사건 3건 중 2건은 1심 또는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1건은 재판 중이다. 또 5건에 불과한 구속영장은 그마저 법원에서 모두 기각됐다. 공수처 스스로 존립 기반을 훼손하는 ‘사고’도 일으켰다. 정치인과 언론인 등의 통신자료를 무더기로 조회해 인권 침해 논란을 불렀고, 이성윤 전 서울중앙지검장을 소환하면서 처장 관용차로 ‘모시는’ 바람에 ‘황제 소환’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소속 검사와 수사관들의 잇단 사직으로 내부 사기는 크게 떨어졌다. 초라한 성적은 공수처의 권한과 규모가 처음부터 잘못 설계된 탓이 크다. 애초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위원회가 제안한 ‘검사 50명, 수사관 70명’ 규모가 전원 검사로 구성된 법무부 티에프(TF)를 거치면서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으로 대폭 줄었다. 우수 인력을 유치하기 위한 신분 보장 조처도 대폭 후퇴했다. 공수처가 유명무실화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랐지만, 당시 문재인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공수처의 모습이다.
여권 추천위원들이 ‘윤심’ 후보를 밀어붙이고 있어 공수처의 ‘수장 공백’ 사태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공수처 스스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공수처를 만든 취지가 검찰 등 권력기관에 대한 견제에 있는 만큼 이런 사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지금 수사하고 있는 ‘해병대 수사 외압’과 ‘전현희 표적감사’ 의혹 사건 등에서 성과를 낸다면 공수처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공수처는 20여년 동안 치열한 토론과 협의를 거쳐 우여곡절 끝에 탄생했다. 검찰 권력이 역대급으로 비대해진 현 정권에서는 더욱 필요한 기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