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주요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 대표들을 만나 12월 개국하는 종합편성채널을 편드는 발언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최 위원장은 이들에게 “종편과 에스오들이 채널협상 과정에서 서로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데, 그러지 말고 시청자 입장에서도 생각해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론 시청자를 들먹였지만 사실상 종편을 거들며 압박을 가한 꼴이다. 방송업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통위원장의 말이라 엠에스오 처지에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분명한 월권이자 부도덕한 행위이다.
잘 알려진 대로 채널 배정을 둘러싼 종편과 엠에스오의 협상은 거의 막바지에 와 있다. 그동안 조·중·동과 매경 등 종편 4사는 ‘황금채널’로 불리는 15, 16, 17, 18번을 전국 단일번호로 달라며 시종일관 고집을 부린 것으로 알려졌다. 엠에스오의 채널 배정권과 시장질서를 무시하고 자기 이익에만 골몰한 셈이다. 그런데도 최 위원장은 양쪽의 합리적인 자율교섭을 조정하기는커녕 협상 막바지에 직접 종편을 편들며 ‘종편 대변자’를 자처하고 있다.
더욱이 최 위원장은 에스비에스(SBS)과 문화방송(MBC)이 독자적인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사)을 만들어 광고 직접영업에 나서려는 것까지 수수방관하고 있다. 그는 지난 2일 국회에서 “(문화방송 등) 방송사의 직업영업이 (방송광고) 시장의 혼란으로 이어지리라고 단정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종편과 지상파의 직접영업이 광고시장을 약육강식의 진흙탕으로 만들고 방송의 공공성과 여론 다양성을 훼손할 것이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이는 정부가 종편을 허가하며 내건 미디어산업의 건전한 발전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그런데도 최 위원장은 상식마저 뻔뻔스럽게 부인하며 여론 공공성과 다양성 확보에 눈을 감고 있다. 방송의 과열경쟁을 막으려면 종편이 민영 미디어렙에 포함되는 ‘1공영 1민영’ 미디어렙 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게 학계의 대체적인 시각인데도 미디어렙법 문제를 국회에 미루고만 있다.
최 위원장이 직분에 조금이라도 충실해지려면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종편의 폭력적인 시장질서 교란 행위와 지상파의 광고 직접영업 움직임을 바로잡는 게 그것이다. 이런 책무를 수행할 생각이 없다면 방통위원장 자리에서 당장 물러나는 것이 옳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