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보위원회가 지난 10일 전년도 국가정보원 결산안을 심의했지만 대북심리전단 사업비 문제로 결산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국정원 댓글사건에 연루된 대북심리전단의 지난해 예산 150여억원 중 3분의 2가량인 95억원이 증빙서류도 없이 사용처가 불분명한 탓이다.
국정원 예산의 불투명성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보위에서 야당 의원들은 이른바 댓글 알바로 알려진 이아무개씨에게 국정원 돈으로 추정되는 9234만원이 지급됐는데 이것이 심리전단 예산에 포함됐는지를 추궁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정원 기조실장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하다가 추후 내역을 보강해 오기로 했다.
정보 업무의 특성상 예산 항목 자체를 비밀에 부쳐야 할 경우도 많다. 굳이 분류하자면 대북심리전도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정원이 대북심리전을 명목으로 사실상 선거 등 국내 정치에 개입한 사실이 검찰 조사와 재판에서 상당부분 드러났다. 이처럼 의혹이 커진 상황에서는 국정원이 관련 예산의 출처를 합리적인 선에서 국회에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조원대를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국정원 예산은 국회 예·결산 심사의 대표적인 사각지대로 알려져 있다. 정부가 지난달 국회에 보고한 내년도 국정원 예산은 4700억여원에 이른다. 하지만 특수활동비로 정부 각 부처에 나누어 편성한 비밀 예산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예비비까지 합하면 국정원 예산은 1조원을 훌쩍 넘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예비비나 특수활동비는 사용내역을 공개하지 않도록 돼 있고, 본예산도 정보위에서 구두로 항목만을 대면보고할 뿐이다.
정치권에선 국정원 개혁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국정원 예산에 대한 국회의 통제 강화를 내세웠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야당일 때는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정권을 잡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이다. 새누리당 역시 야당 시절인 2006년 국정원 예산에 대한 통제를 국정원 개혁의 주요 목표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예산안 첨부서류 제출 의무화, 예산의 목적 외 사용 금지, 분기별 회계보고 등을 의무화했다. 민주당이 이번에 마련한 국정원 개혁안 역시 예산에 대한 국회 통제를 분명히 했다.
정부 예산의 의회 통제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다. 특히 국내정치 개입이라는 비민주적 행태를 반복해온 국정원에 대해서는 관련 예산을 국회가 적절히 심사하고 감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야를 가릴 것이 없다. 정치권은 이번 기회에 국회의 국정원 예산 통제 강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