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의 누리집은 이 기관이 하는 일을 세 가지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의 영예로운 삶이 유지·보장되도록 보상금 지급과 교육·취업·의료·대부 등의 보훈정책을 수립하여 지원하고, 독립·호국·민주화 관련 기념 추모행사를 통해 민족정기 선양과 국민의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며, 장기복무 제대군인의 사회정책 지원으로 현역 장병의 사기를 진작시켜 국가안보의 버팀목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그러나 국가보훈처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벌인 활동을 보면, 이런 설명은 단지 ‘위장 간판’일 뿐이고 실제론 선거 개입이라는 ‘불법 영업’을 해왔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겨레>가 입수한 자료를 보면,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대선 전인 5~11월에 나라사랑정신 선양 연수교육 명목으로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에서 모두 7차례의 ‘오피니언 리더 과정’을 열었다. 참가 대상은 대구의 경우 자유총연맹과 새마을부녀회, 서울은 서울교총 소속 교장들과 라이온스클럽 회원들, 부산은 총재가 새누리당 중앙위원인 팔각회 회원 등이 대거 포함됐다고 한다. 교육 대상에 친여 인사들을 중점적으로 포함한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편파적 교육 내용이다.
국가보훈처는 대구 교육에서는 “북한의 전위세력들인 좌익들이 국회로 진입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며 좌파정권의 특색으로 성장보다 분배 중시, 큰 정부 선호, 교육평준화 지지, 노동자 우선 등을 거론했다고 한다. 또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은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폭력에 가까운 행패”로 묘사한 반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공업화와 농촌근대화 운동을 성공적으로 펼쳤고 “그의 치적은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업적”이라고 칭송했다는 것이다. 부산에선 ‘종북세력의 실체’라는 동영상을 상영하고 “유신체제하의 반유신·반독재 민주화 투쟁은 종북세력에 의한 것”이라고 매도했다고 한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기관이 선거캠프조차 내놓고 하기 어려운 조잡한 이념공세를 노골적이고 조직적으로 벌인 것이다. 국가정보원이 댓글공작을 통해 대선에 개입한 것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국기문란 행위다. 이명박 정권 때 임명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박근혜 정부 출범 때 이례적으로 유임된 것도 이런 편파 대선개입에 대한 보상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사정당국은 국가보훈처의 불법 선거개입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가 나온 만큼 즉각 수사를 벌여 책임자를 엄벌해야 한다. 국가기관이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일을 절대 용납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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