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요원들의 ‘개인적’ 일탈일 뿐이라며 ‘조직’ 차원의 범행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고수했다. 4일 국회 정보위의 국정감사에서 남 원장은 심리전단의 대선개입 행위를 원세훈 전 국정원장 개인의 ‘의지’ 문제로 돌리며 자신은 “정치에 개입할 생각도 없다”고 강변했다. 국정원장이 조직을 동원해 한 일을 개인의 행위로 치부할 수 있다고 여기는 그의 태도는 최소한의 공적의식조차 결여한 것으로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그동안 드러난 증거에 비춰볼 때 그의 발언은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도 않다. 우선 같은날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한 재판에서 공개된 심리전단 직원 황아무개씨의 검찰 진술내용은 ‘조직적’ 범행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원장님 지시가 있으면 차장, 국장, 과장의 단계적 회의를 거쳐 (지시가) 구체화돼 일선 직원에게 전달된다”고 증언했다. 또 법원이 이종명 국정원 전 3차장과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에 대한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도록 한 것도 조직적인 범죄라는 강력한 방증이다. 재판부가 5만여건에 이르는 트위터글에 대한 공소장변경 신청을 허가한 것이나, 원색적인 글 내용과 엄청난 규모에 비춰봐도 개인적 일탈이라는 주장은 억지다.
문제는 그의 이런 태도를 단순히 한 개인의 시대착오적 ‘인식’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동안 역대 정권의 정보기관 수장들은 북풍조작을 비롯한 각종 선거 개입으로 줄줄이 처벌을 받아왔다. 그런데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국정원장 자신은 문제의 심각성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선 조직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수밖에 없다.
특히 지난 대선에선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 새누리당 에스엔에스미디어본부 등이‘3각연계’한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또 국정원이 보훈처나 국방부 등에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매도하는 내용의 디브이디까지 건네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 원장은 개인의 ‘의지’ 운운하며 오만하게 버티고 있다. 그를 그대로 두고는 국정원 개혁은커녕 불법적인 선거개입이나 정치공작의 악습이 하나 달라지지 않을 게 분명하다. 남 원장의 사퇴야말로 국정원 개혁의 첫단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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