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에게 요청되는 자질은 더이상 양심과 소신, 진실 추구 노력, 국민에 대한 봉사정신 등이 아니다. 이런 아름다운 단어들은 검찰 사전에서 지워야 옳다. 대신 침묵과 굴종, 영합과 눈치 등이 가장 필요한 자질이 됐다. 대한민국의 검사는 권력과 관련된 불의를 보면 결코 ‘아니다’라고 외쳐선 안 된다. 대신 ‘권력 만세’를 외치며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팀장을 맡았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에게는 중징계가, 수사 방해 외압 의혹을 받은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에게는 징계 제외 결정이 내려진 것은 한마디로 검찰이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벗어던졌음을 의미한다.
검사라면 모름지기 범죄행위 앞에 분노하고 정의를 실현하려는 사명감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양심을 팔고 소신을 꺾으라는 상사의 회유와 종용, 협박을 단호히 물리쳐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검사의 모습이다. 하지만 국정원 직원들의 국기문란 행위를 법의 이름으로 심판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윤석열 여주지청장에게는 정직 3개월의 중징계가,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는 따위의 말로 노골적인 압박을 가한 조영곤 지검장에게는 면죄부가 내려졌다. 정의가 물구나무서고 선과 악이 뒤바뀐 오늘의 처참한 현실이다.
대검이 조 지검장에게 그토록 면죄부를 안겨주고 싶었다면 ‘입증이 어렵다’는 따위의 허술한 변명을 갖다 붙여서는 안 된다. 그동안 나온 대법원 판례에 비춰보면 조 지검장의 발언은 징계 정도가 아니라 정식으로 기소돼야 할 수준이다. “내사 진행이 외부로 공개되지 않도록 하라”는 신승남 전 검찰총장의 발언에 대해 대법원은 지난 2007년 “그런 언급만으로도 내사 중단 지시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며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렸다. 대검은 이런 판례라도 제대로 읽고 조 지검장에 대해 징계 제외 결정을 내리든 면죄부를 주든 했어야 옳다.
궁금한 것은 젊은 검사들이 이번 징계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점이다. 검찰 내부통신망에는 벌써부터 “불명예를 스스로 덮어쓰는 결정”(김선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검사) 등의 한탄과 비판의 목소리가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다른 젊은 검사들도 대부분 이런 생각에 동조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일선 검사들이 용기있게 검찰 수뇌부의 잘못을 지적하고 조직을 바로잡기 위해 나설지는 미지수다. 그것이 그동안 익히 보아온 검찰의 한계이며, 오늘의 일그러진 검찰을 있게 한 조직문화이기도 하다. 대검의 이번 징계로 ‘국정원 무죄 만들기’의 본심은 더욱 확실히 드러났다. 검찰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상태에서 특별검사제 도입의 당위성은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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