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이 국가기관들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제 도입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민주당과 정의당, 안철수 의원을 포함한 야권과 시민사회단체 쪽은 20일 ‘단일 특검 법안’을 국회에 공동발의하기로 합의한 반면 새누리당은 특검 수용 절대불가 방침으로 맞서고 있다. 특검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정치 정상화는 요원하며 예산안 처리 등 국회 일정 역시 파행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검의 사전적 정의는 ‘수사 자체의 공정성을 기대할 수 없거나 수사가 공정하게 이뤄졌다고 볼 수 없을 때, 정권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정규검사가 아닌 독립된 변호사로 하여금 수사와 기소를 담당하게 하는 제도’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특검 도입 취지에 부합하는가. 여야 주장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이런 원론적 질문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그리고 그 대답은 ‘그렇다’이다. 아니 그런 정도를 떠나 ‘매우 그렇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분명히 이 사건의 이해당사자다. 자신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결과적으로 국가정보원 등의 댓글·트위터 활동 등으로 혜택을 본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이해당사자인 사건에서 행정부 소속인 검찰한테 수사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기대하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수사 초기부터 끊임없이 청와대와 법무부 등의 외압 의혹 시비가 잇따르고,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윤석열 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팀장 등이 강제로 밀려난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다. 사안의 성격상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은 애초부터 특검이 맡아야 할 전형적인 사건이었다.
국정원이 국군 사이버사령부에 ‘심리전 지침’을 주는 등 사실상 대선개입 작전을 총괄지휘했다는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개인적 일탈” 운운하며 진실을 감추기에 바쁜 군 당국에 수사를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 걸음 나아가 국정원과 군 등이 얽히고설킨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활동 전모를 입체적으로 밝혀내기 위해서도 특검 차원의 통합수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검 문제를 ‘대선 연장전’ 따위의 말로 비판하는 것은 전형적인 물타기다. 특검 도입 목적은 국가기관의 불법적 선거개입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자는 데 있지 대선 결과를 원천무효로 돌리자는 것이 아님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대선 불복이니 연장전이니 하는 허무맹랑한 말로 특검 도입을 저지하려는 얕은 꼼수는 제발 거두기 바란다.
특검 도입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박 대통령뿐이다. 박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 여야가 협상을 시작하면 특검의 범위와 시기 등 구체적인 문제에서는 여러 가지 절충이 가능할 것이다. 국민적 갈등이 증폭된 사안에 마침표를 찍는 일 역시 대통령의 임무 중 하나다. 국정 최고책임자답게 이 사안의 매듭을 풀기 바란다. 이런 모든 것을 떠나 본인이 걸려 있는 문제를 이리저리 구실을 대며 피하고 도망치는 것은 얼마나 비겁하고 뻔뻔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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