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공천 대학살’의 후폭풍으로 유례없는 내분을 겪으며 휘청거리고 있다. 유권자들의 시선도 싸늘하게 식었다. 야당으로서는 여당의 실정과 폭정을 심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그런데 야권은 자체 분열과 지리멸렬함으로 그런 반사이익을 누릴 기회조차 스스로 걷어차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20일 발표한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봐도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사실상 공천의 전권을 행사해온 김종인 대표가 비례대표 2번으로 ‘셀프 공천’을 한 것은 정치도의나 상식, 유권자의 정서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비례대표 후보들의 면면에서도 참신성이나 소수자 배려의 정신 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도덕성과 정체성 등에서 흠이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더민주당은 지역구 경선에서 탈락한 후보를 다른 지역에 전략공천하는 돌려막기 공천도 했다. 경선 탈락자들이 다른 지역에서 경쟁력을 가질지도 의문이지만 다른 낙천한 후보들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그동안 현역 의원에 대한 과감한 컷오프 등으로 나름 점수를 쌓는 듯하더니 막판 비례대표 공천과 돌려막기 공천의 악수로 한순간에 점수를 까먹는 분위기다.
더 큰 문제는 선거 구도 자체가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안겨주는 쪽으로 점차 굳어지고 있는 점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선거 승패를 결정지을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야권 후보들의 지지율을 합하면 50%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난다. 야권 후보들이 연대를 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새누리당 후보들을 이길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야권통합은 이미 물 건너갔고 야권연대마저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 결국 이대로 가다가는 야권의 분열로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안겨줄 게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국민의당은 야권연대 절대 불가를 외치며 오직 새누리당과 더민주당을 싸잡아 비판하기 바쁘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는 20일에도 기자회견을 열어 “새누리당은 ‘여왕의 신하’를 뽑고 더불어민주당은 ‘친문 세력’을 공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그런 비판을 할 자격이 없다. 다른 당 공천에서 탈락한 후보들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여 원내교섭단체 등록을 하는 등의 구태와 몰염치가 국민의당의 현재 모습이다. 후보들 면면을 봐도 그나마 호남을 제외하고는 당선을 기대할 만한 후보들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지금 새누리당의 오만함은 야권의 이런 지리멸렬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무리 민심의 역풍이 불어도 야당이 너무 약체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여론의 비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다.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하면 그것은 ‘여당의 승리’가 아니라 ‘야당의 패배’임을 야권은 분명히 직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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