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제20대 총선에서 거둔 성적이 애초의 자기 실력 이상이라는 것은 세상이 아는 일이다. 현 정권에 대한 거대한 민심이반 기류 속에서 정권심판론의 덕을 가장 톡톡히 누린 게 바로 더민주다. 더민주가 총선 민의를 제 논에 물대기 식으로 해석하거나 선거 결과에 우쭐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런데 더민주 지도부의 행보를 보면 벌써부터 한숨이 나오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김종인 대표는 세월호 참사 2주기 공식행사에 “정치적 공방”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김 대표는 “개인적인 자격”으로 16일 서울 광화문에 차려진 분향소를 찾아 분향했다. 김 대표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 문제에 대해서도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 김 대표가 해석하는 총선의 민심은 무엇인지, 더민주의 정치적 지향점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 대표는 자신이 내세운 경제심판론이나 중도강화론 등이 총선 승리 요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앞으로 당이 정책과 이념에서 더욱 우클릭해야 하며, 세월호 참사 같은 ‘민감한’ 문제는 되도록 거리를 두는 게 유리하다고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큰 착각이자 오판이 아닐 수 없다. 세월호 문제는 결코 여야의 문제도, 진보와 보수 갈등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영문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난 꽃다운 생명들에 대한 슬픔과 아픔의 문제이며, 국가의 의무 불이행과 책임방기에 대한 진정한 뉘우침의 문제다. 국민의 정당한 슬픔과 분노에 얼토당토않은 정치적 덧칠을 한 것은 바로 이 정권이다. 그런데 김 대표는 정권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스스로 빠져 ‘정치적 공방’을 이유로 세월호를 외면했다.
세월호 참사 2주기 공식행사에 박근혜 대통령과 김종인 더민주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나란히 참석하지 않은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국민의당 약진으로 한국 정치의 무게중심이 더욱 오른쪽으로 기울면서 정치권이 보수 경쟁에 빠져들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심상치 않은 징조다. 야당 대표들이라면 마땅히 세월호 참사 2주기 공식행사에 참석해 “대통령도 왔어야 한다”고 질타해야 옳은데도 모두 세월호를 외면했다.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 속에는 세월호 사태에 대한 이 정권의 뻔뻔하고도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응징론도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정권심판론의 수혜자들은 그 민심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야권 중에서도 더 오른쪽으로 기운 국민의당은 그렇다 쳐도 더민주의 이런 행보가 과연 전략적으로 옳은지도 매우 의문이다. 지금의 정치 지형상 더민주는 우클릭 경쟁에서는 국민의당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어렵게 돼 있다. 더민주가 국민의당과 차별화되는 확고한 이념과 철학,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입지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김종인 대표는 자꾸 거꾸로 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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