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침몰한 지 9일로 1000일이다. 열여덟살 꽃 같은 아이들이 선실에 갇혀 물로 빠져 들어가던 모습을 손 하나 못 쓴 채 지켜봐야 했던 2014년 4월16일 그날의 경악과 충격이 선연하다. 그렇게 떠나보낸 넋 삼백넷 가운데 아홉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의 진실도 인양되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남아 있다.
기억은 남은 이들의 몫이다. 그날 제대로만 했다면 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기에 세월호는 결코 ‘사고’일 수 없다. 세월호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탓에 벌어진 참사다. ‘학살’이란 말도 과하지 않다. 참사에서 살아남은 단원고 학생들은 7일 촛불집회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었다. 구하러 온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들의 말대로 살아남은 아이들은 구조된 게 아니라 스스로 탈출한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국가’가 정작 필요한 순간에 부재했던 것이 세월호 참사의 본질이다. 아이들의 환한 얼굴, 못다 핀 꿈들과 함께 우리가 기억하고 거듭 물어야 할 것은 그래서 ‘그날 국가는, 대통령은, 정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이다.
먼저 답해야 할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위기의 순간에 대통령은 해야 할 일도 많고, 할 수 있는 권한도 많은 자리다. 군을 비롯해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을 구조에 쏟아부을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그렇게 하기는커녕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7시간을 보냈다. 그러고도 지금껏 입을 닫고 있다. 대통령의 행적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예 잠적했거나 수사·증언에 응하지 않았고, 그나마 증언에 나서더라도 모르쇠만 거듭했다. 헌법재판소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봤는지 시간대별로 밝혀달라’고 요구했지만, 대통령 쪽은 여태껏 차일피일 답변서 제출을 미루고 있다.
그러고도 박 대통령은 1일 “제 할 것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뻔뻔하다. 참사 당일 대통령 곁에 있었던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의 증언으로도, 당일 대통령은 보고와 지시는 물론 텔레비전의 참사 중계조차 제대로 보지 않은 듯하다. 안봉근 전 비서관이 보고하러 왔다는 오전 10시께부터 미용사가 들어온 오후 3시께까지 대통령이 뭘 했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드러난 것만 보면, 허망하게도 그날 대통령은 일을 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 책임은 특별검사팀의 수사와 헌법재판소 심판을 통해 분명히 밝혀야 한다.
진실을 밝혀야 할 일은 그 밖에도 많다. 세월호 선체의 침몰 과정과 원인은 어느 정도 추정되지만, 배가 처음에 어떻게 기울기 시작했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진상을 정확히 알려면 세월호 인양이 우선이다. 미수습자 때문에라도 더 미룰 일이 아니다. 정부·여당의 방해로 좌초했던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도 정보접근권과 강제조사권을 보강해 다시 띄워야 한다. 진실은 영원히 침몰하진 않는다. 우리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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