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대공수사권을 넘기고 ‘국외’와 ‘북한’ 정보만 수집하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내놓은 뒤 논란이 뜨겁다. 일부에선 ‘간첩은 누가 잡느냐’며 ‘이적행위’ 운운하는 극언까지 동원해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터져나온 온갖 ‘적폐’를 고려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들이다.
국가안보에 매진해야 할 인력을 선거·정치 공작에 내몰고, 국민 혈세를 대통령과 원장 및 가족 사생활에 빼돌려 쓰는 등 숱한 의혹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드러나고 있는 게 국정원 실상이다. 댓글공작,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 정치공작도 그렇거니와 비밀수사·공작에 써야 할 특수활동비 수십억원을 원장의 국외연수 준비, 부인의 사교모임용으로 썼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정권안보에 매진하느라 국가안보를 구멍 낸 전직 국정원장과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돼 국민 신뢰가 바닥인 상태에서, 마치 다른 나라에서 살다 온 사람들처럼 탁상공론을 펴는 건 설득력이 없다.
대공수사 기능을 이관할 기관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국정원법 개정안만 먼저 제출한 건 물론 지적받을 만하다. 수사 공백이 없도록 현 정부 공약인 경찰청 보안국 신설방안을 포함해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와 함께 정리돼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사권을 떼어내는 것 자체가 안보를 엄청나게 훼손할 것처럼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일부에선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이 분리되면 효율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주장을 편다. 이미 권한을 남용·악용한 전과를 숱하게 갖고 있는 정보기관이 비대한 괴물 조직으로 그대로 남는다면,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지고 국민 불안감을 키울 것이다. 중국·러시아 등 인권 후진국과 이스라엘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미국·영국 등 대다수 선진국이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을 분리한 것도 권한남용의 부작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조직 분리를 통해 상호 경쟁함으로써 선진국형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수십년 누적된 적폐를 이번 기회에 확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동안 국가안보를 정치에 악용해온 사실이 속속 드러났는데도 ‘정치보복’이라며 사실상 이를 방관·비호해온 수구보수 야당·언론들이 이제 와서 ‘안보’를 내세워 국정원 개혁을 비판하는 건 일고의 가치가 없다. 국가 정보기관의 발전을 위한 조언이 아니라 망치려는 ‘악마의 유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