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백두산 천지다. 1994년 백두산 첫 방문 이후 지금껏 백두산 사진만 찍어온 안승일(72) 작가의 작품이다. “어느 해 6월 중순 백두산 남쪽 조-중 경계에서 찍었다”고만 작가는 밝혔다. 지금도 한국인은 북녘을 거쳐 천지에 오를 수 없다. 군사분계선 넘어 북녘을 거쳐 천지에 오를 수 있다면, 몽골 초원과 시베리아와 유럽에 이를 수 있다. 천지는 우리들을 다른 세상으로 이어주는, 자유와 소통과 열림의 다리다. 평화의 다른 이름이다. 하여, 천지는 아직도 “우리들 희망의 시작”이다. 사진 안승일 작가, 글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1988년 5월15일 발행된 <한겨레신문> 창간호에 실린 백두산 천지. 그때, 백두산 천지는 금기였다. 갈 수 없는 땅, 상상해선 안 될 곳. 30년 전 오늘 <한겨레신문>이 창간호 1면을 커다란 백두산 천지 사진으로 채운 이유다. 한국전쟁 이후 천지에 오른 한국인은 공식·공개적으론 단 한 명도 없었다. 전후 한국인이 찍은 사진이 있을 리 없다. 창간호의 천지는 일본의 세계적 사진작가 구보다 히로지(79)의 작품이다. 그때 <한겨레>가 천지 사진에 담은 게 ‘통일의 열망’만은 아니다. 민주주의와 민중(시민)생존권은 금기의 굴레에 갇혀서는 숨을 쉴 수 없음을 상기시켜, 철창에 갇힌 상상력의 해방을 꿈꾼 것이다. 천지를 “우리들 그리움의 끝이자 희망의 시작”이라 부른 까닭이다.
<한겨레>는 참언론을 갈구하는 시민들의 성원으로 탄생한 신문입니다. 2만7000여명의 창간 주주들이 <한겨레>가 똑바로 설 수 있도록 주춧돌을 놓아 주셨습니다. 이미 많은 언론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시민들이 새 신문을 만드는 데 십시일반 힘을 모은 이유는 간명했습니다. 독재정권 눈치를 보며 진실을 감추고 비트는 기존 언론이 못미더웠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겨레>는 창간 발기 선언문에서 “권력의 부당한 간섭을 거부하고, 용기있게 진실을 보도할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창간 이후 <한겨레>의 30년은 진실을 찾기 위한 험한 여정이었습니다. 정권과 재벌의 치부를 드러낸 숱한 특종은 그런 노력의 산물입니다. 때로는 정권과 자본의 혹독한 탄압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진실을 좇는 과정에서 <한겨레>가 부여잡은 핵심 가치 중 하나는 ‘평화’입니다. ‘진정한 민주화 실현’ ‘민중의 생존권 확보’와 함께 ‘민족의 평화통일’을 창간 이념으로 삼았습니다. 서슬 퍼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반북 이데올로기’에 외롭게 맞서며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추구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한겨레>의 30년은 평화를 향한 여정이기도 했습니다. 진실과 평화를 찾아 달려온 <한겨레>의 30년을 12개 장면으로 재구성해 봤습니다._______
진실 ① 고문기술자 이근안 경감 ‘공개 수배’ _1988년 12월21일
고 김근태 전 의원 등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고문한 ‘얼굴 없는 고문기술자’의 실체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다. ▶기사 바로가기 ② 이지문 중위 ‘군 부재자 투표 부정’ 폭로 _1992년 3월23일
언론이 권력의 눈치를 보던 권위주의 정권 시절, <한겨레>는 폭압에 맞선 양심선언의 통로이자 보호자였다. ▶기사 바로가기 ③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김현철씨 국정개입 의혹 특종 _1997년 3월10일
‘소통령’으로 불리던 김현철씨의 와이티엔(YTN) 사장 선임 개입을 보여주는 녹취록을 입수해 보도함으로써, 그의 국정개입 실상을 폭로했다. ▶기사 바로가기 ④ 김용철 변호사, 삼성 비자금 폭로 _2007년 10월30일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양심 고백을 처음으로 보도했다. 이 보도 뒤 삼성은 2년 넘게 <한겨레>에 광고를 싣지 않았다. ▶기사 바로가기 ⑤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첫 보도 _2013년 1월30일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커뮤니티 사이트 ‘오늘의 유머’ 게시판에 댓글을 달았다는 사실을 최초로 보도했다. ▶기사 바로가기 ⑥ 탄핵의 서막 연 ‘비선실세 최순실’ 특종 _2016년 9월20일
‘최순실’이라는 비선실세의 존재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다. 이후에도 잇단 특종으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국면을 주도했다. ▶기사 바로가기 _______
평화 ① 안기부, 한겨레 편집국 침탈 _1989년 7월13일
국가안전기획부는 한겨레 임직원들의 저항에도 편집국 철문을 쇠망치로 부수고 난입해 서경원 의원 방북 관련 취재 자료를 탈취해감으로써 언론자유를 유린했다. ▶기사 바로가기 ② 시베리아 북한 벌목장 르포 _1994년 5월22일
북한 벌목장의 운영실태와 그곳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실상을 처음으로 현지 취재했다. ▶기사 바로가기 ③ 정연주 워싱턴 특파원의 평양 르포 _1994년 9월12일
국내 언론인으로는 처음으로 단독 방북 취재를 통해 평양 소식을 전했다. ▶기사 바로가기 ④ 북녘 동포 돕기 캠페인 _1997년 6월27일
북한에 기근이 심각하던 1997년 ‘아! 굶주리는 북녘’ 연재에 이어 ‘북녘 동포를 도웁시다’와 ‘북녘 어린이에게 생명을’ 캠페인을 벌였다. ▶기사 바로가기 ⑤ 평양에서 ‘윤이상 통일음악회’ 개최 _1998년 11월5일
민간 주도의 첫 남북 합동 음악회인 ‘윤이상통일음악회’를 북한 윤이상음악연구소와 함께 평양에서 개최했다. ▶기사 바로가기 ⑥ 남북 정상 ‘판문점 회담’ 보도 _2018년 4월28일
회담 다음날치 지면을 ‘정상회담 특별판’으로 제작했다. ▶기사 바로가기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