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서초구 에스피시(SPC)그룹 사옥 입구. <한겨레> 자료 사진
공정거래위원회가 29일 ‘통행세 거래’ 등 부당지원 혐의로 중견기업집단 에스피씨(SPC)에 64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그룹 총수인 허영인 회장을 비롯한 3명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과징금은 부당지원에 매겨진 것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부당지원으로 총수 2세들에게 돌아간 이득만큼 중소기업과 소비자들이 피해를 봤을 것이다. 검찰이 철저히 수사해 법적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할 것이다.
공정위 조사로 드러난 에스피씨의 대표적인 부당행위는 밀다원, 에그팜 등 계열사 8곳이 파리크라상 등 제빵회사에 물품을 공급하는 과정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삼립을 끼워 넣어 통행세를 받아 챙기도록 한 일이다. 또 2011년 4월 당시 양산빵 시장 점유율·인지도 1위였던 계열사 샤니의 상표권을 삼립에 무상 제공했고, 파리크라상과 샤니 보유의 밀다원 주식을 정상가격(404원)보다 턱없이 낮은 255원에 삼립에 넘겨 20억원을 지원한 것으로 조사됐다.
에스피씨의 이런 부당행위는 지주회사 격인 파리크라상을 통해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하고 경영권을 총수 2세에게 넘기기 위한 것이라고 공정위는 보고 있다. 삼립의 기업 가치를 높여 2세 보유의 삼립 주식을 파리크라상에 현물출자하거나 파리크라상 주식으로 바꾸는 식으로 2세의 지주회사 지분을 높이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허 회장이 통행세 거래를 직접 주도한 정황도 이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2011~2018년에 걸쳐 길게 이어진 에스피씨의 부당행위로 삼립 쪽에 돌아간 과다 이익은 414억원에 이른다. 경쟁사업자인 중소기업과 소비자들은 그만큼 손해를 본 셈이다.
그동안 대기업집단에 가려져 있을 뿐이지 중견기업집단들도 부당거래 행위가 만연해 있다는 얘기가 나돌던 터였다. 내·외부 감시망이 허술해 더 심할 것이라는 지적까지 있었다. 이번에 사실로 확인된 만큼 공정위가 중견기업집단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통행세 거래 같은 부당행위는 시장경제 질서를 어지럽혀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는 중대 범죄다. 기업 규모나 경제 상황과 상관없이 엄한 제재로 경각심을 줘야 한다. 아울러 공정위의 역할 강화와 함께 법망 정비가 필요하다. 20대 국회에서 폐기된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을 21대 국회에선 반드시 처리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 부당행위 방지 장치를 더 촘촘하게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