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기자생활] 장나래|정치팀 기자
“기자 말고 민지가 보기엔 어때요?”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이 한창인 요즘, 각 후보 캠프를 취재하다 보면 오히려 기자인 내가 ‘취재당하는’ 상황과 종종 마주친다. 그들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는 ‘민지’(MZ 세대 머리글자를 따 의인화한 이름) 표심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민지들이 ‘극혐’하는 꼰대 낙인만은 피하고 싶은 중장년 남성 후보 캠프들의 필사적 노력이 엿보인다. 최근 같은 당 소속이었던 곽상도 의원 아들의 50억 퇴직금 수령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은 일제히 “상도수호는 없다”는 입장을 내며, 민지들의 민감도가 높은 공정 이슈에 발 빠르게 대응했다. 고집이 센 편인 홍준표 후보도 캠프에 이영돈 프로듀서를 영입했다가 민지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2시간 만에 철회했다. 후보들은 남다른 감수성을 가진 민지들의 역풍을 누구보다 두려워한다. 민지들의 마음을 얻어보려 밤마다 ‘라방’(라이브 방송)을 켜고, 아이돌 연습생 등으로 변신하는 어설픈 ‘부캐 놀이’도 바지런히 시도한다. 장유유서와 경륜이 미덕이던 정치권에서 ‘요즘 것들’이 간절해진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엠제트 세대가 차기 대선을 달굴 화두가 되는 걸까 하는 기대감도 생긴다.
민지들이 실제 대선에 갖는 관심도 꽤 높은 편이다. 주변 민지들 역시 내가 정치부 기자라는 이유로 “누가 우리를 대변해줄 후보인지” 집요하게 묻고, 나름의 기준을 세워 검증한다. 자신과 코드가 맞는다고 느낀 후보에게 적극 호응했다가도, ‘아니다’ 싶은 사안이 나오면 쿨하게 지지를 철회한다. 이념·지역 등을 잣대로 삼는 기성세대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선거를 앞두고 청년에게 ‘반짝’ 갖는 관심은 귀신같이 알아챈다. 여야 모두 민지들의 마음을 잡아야 집권이 가능하다는 절박함을 보이지만, 정작 당사자에게는 호소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다.
각 캠프에서 고심 끝에 내놓은 결과물을 보면, 왜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되는 면도 있다. 윤석열 캠프가 상대적으로 저조한 20~30대 지지세를 넓히려고 꺼내 든 야심작은 ‘민지야 부탁해’ 캠페인이었다. 홍보 영상에 등장한 윤 후보는 “민지한테 연락이 왔어”라며 회의실로 들어온다. 회의 중 작심한 듯 책상을 쾅 치고 일어난 윤 후보가 “야, 민지가 해달라는데 한번 좀 해보자. 같이 하면 되잖아”라고 소리치자 실무진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 영상을 본 민지들은 싸늘하다 못해 얼어붙은 분위기다. “사무실에서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야’라고 부르는 상사에, 의견 개진 한마디 없이 눈치만 보고 고개만 끄덕이는 직원들. 자기 할 말만 하다 급기야 책상까지 내려치고 자기 뜻대로 하자며 회의를 끝내는 상사가 윤 후보가 젊은 층에게 보여주고 싶은 리더의 모습이냐”는 게 대표적인 반응이다. “엠제트가 가장 싫어하는 구시대적 리더” “꼰대” “민지 킹받겠다” “윤캠에 스파이 있다”와 같은 냉소적 반응만이 유튜브 댓글창을 채웠다. 윤 후보가 청년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자는 의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민지들의 감수성은 조금도 따라가지 못했다.
그동안 후보들이 민지들과 심리적 거리 좁히기에만 열중했다면, 공약이라는 정공법도 아직 남아 있다. 2030 남녀가 서로 다른 투표 성향을 보이다 보니, 공약 발표에 어려움을 호소하며 ‘아슬아슬’ 외줄을 타는 모습도 눈에 띈다. 경선 토론회에 주로 공방 소재로 등장하는 ‘여성징병제’나 ‘여성가산점제’ 등의 논의가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방향으로만 이뤄지고 있는 건 씁쓸한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20~30대 여성들을 위한 공약이 대부분 출산과 육아에만 쏠려 있는 사이, 이낙연 민주당 후보의 자궁경부암 무료 접종과 변형 카메라(몰카) 이력 관리제, 이정미 정의당 후보의 비혼 가족구성권 부여와 남녀 동수 내각 등 신선한 공약으로 민지들에게 한발 더 다가가려는 노력도 분명 존재했다. 두 후보는 경선에서 아쉽게 탈락했지만 공약만은 다른 후보의 빼어난 안목으로 재탄생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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