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중(왼쪽)·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저녁 국회 당대표실에서 성 비위 의혹으로 제명된 박완주 의원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사과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86세대 중진인 박완주 의원이 성폭력 가해로 제명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12일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선 한숨과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2018년 안희정 충남지사, 2020년 오거돈 부산시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차례로 권력형 성범죄 사건에 연루된 뒤 동료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이 2차 가해에 가담해 ‘반성없는 정당’이란 오명을 얻은 민주당은 6·1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다시 치명적인 내상을 입게 됐다. 지도부가 거듭 대국민 사과에 나섰지만 지방선거에 끼칠 악영향은 피할 수 없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사과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사건을 “2021년 연말에 발생한 심각한 수준의 성범죄”라고 규정했다. 박 위원장은 “피해자는 자체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려고 했으나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았고 (올해) 4월 말경 우리 당 젠더신고센터로 신고가 들어왔다”며 “비대위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증거를 바탕으로 사건의 심각성을 확인했고 제명 결정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의원의 제명 소식에 민주당의 한 여성 의원은 “말로만 아무리 ‘성평등 세상 만들겠습니다’ 하면 뭐 하겠나. 훨씬 더 행동을 경계해야 하는데,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진 걸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민주당 다른 의원들도 “참담하다. 고개를 들 수가 없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민주당 정치인들의 권력형 성폭력이 민주개혁 진영의 위선과 내로남불을 상징하고, 결국 정권교체의 도화선마저 제공했기 때문이다.
최근 민주당에선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최강욱 의원은 지난달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들과의 비공개 영상회의에서 성희롱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김원이 의원의 경우 올해 초 지역 사무실 보좌관이 또다른 직원을 성폭행해 면직 처리된 데 이어 김 의원 본인과 보좌진이 피해자를 2차 가해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모두 당 윤리감찰단이 조사 중이다. 김 의원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피해자와 당사자는 물론 저의 대처를 포함한 문제까지 윤리감찰단의 강력한 조사가 필요하고 적극적으로 응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보좌진협의회(민보협)는 “최강욱 의원의 발언 문제가 불거진 이후 많은 제보가 들어왔다. 차마 공개적으로 올리기 민망한 성희롱성 발언들을 확인했고 더 큰 성적 비위 문제도 제보받았다”며 “더 많은 제보를 종합하고 당이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도록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성폭력 사건이 추가로 불거질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인 셈이다.
박 의원을 당에서 내보내는 제명 처분으로는 또다른 권력형 성폭력을 방지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내로남불 척결이 우리가 사느냐 죽느냐, 민주당 활로를 좌우할 것”이라며 “윤리특위에 제소하고 국민 대표로서 자격에 문제가 있는 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장태수 정의당 선대위 대변인도 “국회 윤리특위 제소 없는 제명은 꼬리 자르기, 자기 책임 회피”라며 “실질적인 책임을 더불어민주당이 책임 있게 물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김형동 수석대변인은 ”박원순·오거돈 성범죄 사건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은 지 이제 불과 1년 남짓 지났지만, 민주당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책임있는 자세로 수사기관 의뢰 등 진실 규명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스무날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 끼칠 영향도 적지 않아 보인다. 충남 천안을이 지역구인 박 의원은 충남도당위원장까지 지낸 만큼 ‘안희정 트라우마’에 이은 성폭력 사건 앞에서 중원 민심은 요동칠 수밖에 없다. 재선을 위해 이날 선거사무소를 개소한 양승조 충남지사를 비롯한 충남권 출마자들은 90도로 허리를 숙인 채 “이런 불미스런 사태를 맞이한 것에 대해 당 동료로서 충남을 이끌어가는 당원으로서 깊이 백번 사죄한다”고 사과했다.
박빙승부가 예상되는 경기·인천 지역을 비롯한 전국 선거에 미칠 영향도 심상치 않다고 보고 있다. 한 전략통 의원은 “충청권이 문제겠나. 전국에 영향을 미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의원은 “지방선거는 조직투표, 진영투표 양상이 크니 누가 더 투표장에 지지자들이 많이 나오게 하느냐에 달렸다. (이번 사건은) 우리 지지자들이 투표장에 와서 투표할 의지를 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엄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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