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밤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인천시 계양구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소감을 밝힌 뒤 자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6·1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7개 광역단체장 중 5곳만을 건지며 참패하자,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을 향한 책임론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당내에선 “상처뿐인 영광”이라며 ‘당권 불가론’이 나오고, 트위터에선 민주당 지지층을 중심으로 “이재명살리자고_민주당죽었다” 등의 해시태그가 급속도로 번지는 중이다.
2일 아침 조응천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은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위원장의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당선을 두고 “상처 뿐인 영광”이라며 “굉장한 내상이 왔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당내에서 이재명 위원장과 가까운 의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자기 선거 신경 안 써도 되는 지역으로 가서 전국적으로 지원을 나가겠다고 한 건데, (지역에) 발목 잡힌데다가 오히려 비대위원 전체가 다 모여서 거기서 지원 유세를 하는 형국까지 몰렸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보궐에 나온 이유 중 하나가 전당대회 출마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간신히 경기도에서 (민주당이) 이겨서 조금 할 말은 있지만, (이 위원장이) 이 대참패의 일원인이 됐다고 생각한다”며 “깔끔하게 전당대회에 출마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원인을 두고는 “우선 중앙당 전략에서 윤석열 정부 견제론을 들고 나왔는데 인물론으로 갔어야 됐다”며 “저희가 소수야당이라면 견제론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데, 과반 훨씬 넘는 거대야당이고 그나마 덩치만 크지 제대로 실력도 별로 없는 것 같고 못한다”고 돌아봤다. 조 의원은 또 이날 오전 10시 비공개 비대위 회의를 여는 데 대해선 “모든 걸 열어놓고 이야기하게 될 건데 아무래도 책임론이 나오지 않겠나”라며 “총사퇴를 하게 되면 당 자체가 좀 많이 흔들리게 되니 조기에 안정 시켜야 되겠다는 역작용이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두고 “이 책임을 누가 질까요”라며 “자생당사, 자기는 살고 당은 죽는다는 말이 당내에 유행한다더니”라고 꼬집었다. 계양을에 출마해 당선되고, 당의 선거를 승리로 이끌지 못한 이 위원장을 겨냥한 말로 풀이된다. 박 전 원장은 “국민의 판단은 항상 정확하다. 당생자사, 당이 살고 자기가 죽어야 국민이 감동한다”고 적었다.
이번 선거에서 전략공천위원장을 맡았던 이원욱 의원도 밤사이 페이스북에 잇단 게시물을 올려 이 위원장을 비판하고 패배를 반성했다. 그는 1일 밤 이 위원장의 당선이 유력시되자 “이재명 친구, 상처뿐인 영광! 축하합니다”라고 글을 올린 데 이어 2일 새벽 장문의 글을 올렸다. 그는 “전략공천위원장이었던 나는, 이재명 후보에게 당당한 선택을 유도하기 위해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과거 손학규 대표의 분당을 출마 등 험지에 출마하여 선당후사를 보여주었던 민주당 정치지도자의 모습을 이야기했다”며 “열린 선택을 강조했지만 결과는 예상대로였다”고 꼬집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의원 시절 안전한 종로를 떠나 부산으로 간 것은 작은 승리가 목적이 아니라 다윗의 돌맹이로 골리앗에 대항하겠다는 가치의 반영이자 굳은 의지”였으나 “항간에서 얘기하듯 이재명 후보는 본인의 당선을 최선의 가치로 여기고 계양으로 ‘도망’갔다”는 것이다. 그는 “계양을에 준비하던 후보가 있었음에도 왜 이재명 후보가 경선없이 단수 전략공천 되었는가. 설명은 없었다”라고 적었다.
또 이 의원은 “‘재명 친구. 상처뿐인 영광 축하합니다’ 댓글에 비난 댓글이 쇄도하고 있다. 비난 문자도 많이 들어온다”며 “문재인 정부 내내 당내 의원들은 입을 닫아야 했다”고 돌이켰다. ‘문자폭탄’을 의식해 당내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았던 상황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우린 지금 야당이고 변하지 않으면 2년 후, 5년 후 민주당은 없다. 토론하고 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추가로 올린 게시물에서 “이 순간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민주당에서 최소한의 발언이라도 하는 수박이 아닐까”라며 “민주당은 지금 무더위의 여름철보다 훨씬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다. 내가 민주당의 수박이 되겠다”고 썼다. ‘수박’은 일부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이 당 내부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붙이는 별명으로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친문재인계인 홍영표 의원도 “사욕과 선동으로 당을 사당화시킨 정치의 참담한 패배”라며 이 위원장을 저격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대선 이후 ‘졌지만 잘 싸웠다’는 해괴한 평가 속에 오만과 착각이 당에 유령처럼 떠돌았다”며 “저부터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과 당원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고도 패배한 대선에 대해 성찰하지 못했고 반성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이번 지방선거를 대선 시즌 2로 만들고 말았다. 국민만 바라보고 재창당의 각오로 완전히 새로운 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해철 의원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선거 패배에 책임 있는 분들이 필요에 따라 원칙과 정치적 도의를 허물고, 어느 누구도 납득하지 못할 변명과 이유로 자기방어와 명분을 만드는 데 집중하면서 국민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민주당의 모습과 멀어지게 만들었다”며 이 위원장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송영길 전 대표 등을 비판했다. 전 의원은 “정당으로서의 책임정치는 보이지 않고 윤리성, 국민 상식과는 멀어진 의사결정 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지난 대선 패배 후부터 불거져 나왔지만 당 차원의 적극적인 공론화도 이루어지지 못했다”며 “민주당이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방향과 해법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이견을 조율하고 설득하며 방향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장을 만들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를 실천하도록 절차적 정당성과 추진력을 담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