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더불어민주당이 20일 ‘청년 비하’ 논란을 일으킨 펼침막이 “명백한 잘못”이라며 게시 사흘 만에 사과했다. 전날 내놓은 ‘관련 업무를 맡긴 홍보대행사 탓’이라는 해명이 거짓이라는 지적이 나오며 논란이 커지자 자세를 낮춘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청년 구애에 당력을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청년들이 민감해하는 문제에는 ‘감수성’이 떨어지고 보여주기식에만 급급한 당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정식 민주당 사무총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논란이 된 현수막(펼침막)은 민주당의 ‘갤럭시 프로젝트’ 사전 홍보를 위한 티저(호기심 유발) 광고로, 외부 전문가들의 파격적 홍보 콘셉트를 담은 것”이라며 “기획 의도가 어떻다 하더라도 국민과 당원들이 보기 불편했다면 이는 명백한 잘못”이라고 말했다. 이어 “(책임을 용역을 맡은 홍보대행)업체에 떠넘길 게 아니라 당의 불찰이었다. 당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으로서 국민과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갤럭시 프로젝트는 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기획해 오는 23일 시작하기로 한 총선용 캠페인이다. 조 사무총장은 “이 행사는 연기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17일 전국 시·도당위원장에게 “정치는 모르겠고, 나는 잘 살고 싶어” “경제는 모르지만 돈은 많고 싶어!” “혼자 살고 싶댔지 혼자 있고 싶댔나?” 등의 문구가 적힌 펼침막 시안 4개 가운데 2개를 골라 게시하라는 공문을 사무총장 명의로 보냈다. 공문에는 “개인성과 다양성에 가치를 두는 2030세대”를 겨냥했다는 설명도 적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7일 공개한 ‘새로운 민주당 캠페인’ 홍보 펼침막 시안. 더불어민주당 제공
펼침막 문구가 공개되자, 당 안에선 즉각 ‘청년 비하로 읽힌다’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당 의원들이 속한 메신저 단체대화방에서는 “우리가 이런 사회를 지향한다니 동의할 수 없다” “청년 당원들의 항의가 많다” 등의 비판 의견이 이어졌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격한 반응이 나왔다.
결국 민주당은 19일, 이 펼침막을 걸지 않기로 했다. 한준호 홍보위원장은 기자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며 “(논란이 된 문구 제작은) 당에서 한 게 아니고, (홍보대행)업체에서 했던 것”이라며 “일련의 과정에 있어서 업무상 실수가 있었지만 당직자나 당이 개입한 사안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지난 17일 오전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연구원 관계자한테서 갤럭시 프로젝트 콘셉트와 관련된 보고를 받으면서 펼침막 시안도 함께 보고받았다. 이 때문에 거짓 해명 논란까지 불붙자, 조정식 사무총장이 이날 “당의 불찰”이라며 진화에 나선 것이다.
그럼에도 여진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한 민주당 청년 당직자는 “청년 세대가 이기적이라고 하지만 세월호 사건이나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에서 봤듯이 청년들의 연대나 공감 능력은 다른 세대와 다를 바 없다”며 “잘 살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있는 것인데 청년 세대에 대한 공부 없이 단편적인 시각으로 게으르게 접근하니 이런 캠페인이 나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도 이 펼침막 문구가 “청년 세대를 욕심만 많은 무지한 존재로 보는, 오만한 꼰대의 관점”이라고 지적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특히) 운동권 출신 86세대는 특유의 오만한 선민의식이 있고 국민을 무지한 계몽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젊었을 땐 노인 비하 발언을 내뱉다가, 나이 들어선 청년 비하 발언을 내뱉게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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