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박 탈락 지역 의결보류 파장
‘이한구 공천관리위원회’의 4·13 총선 공천심사에 대해 말을 아껴온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6일 침묵을 깼다. 전날 저녁 8명의 현역 의원이 무더기로 공천에서 배제되며 “대학살”이라는 비판이 거세지자 이날 오후 5시 긴급하게 자청한 기자간담회에서, ‘공관위가 원칙도 없이 현역 의원들을 공천에서 배제했다’고 비판했다.
비장한 모습으로 김 대표가 문제 삼은 곳은 공관위가 지난 14~15일 결정한 지역들 가운데 단수추천 지역 7곳, 여성 우선추천 지역 2곳 등 총 9곳이다. 모두 현역 의원들이 공천에 떨어진 곳들이다.
그동안 김 대표는 ‘100% 상향식 공천’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해왔다. 지난달 이한구 위원장이 우선·단수추천지역을 권역별로 최대 3곳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히자 “공천 직인을 찍지 않을 수도 있다”며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후에도 공관위 결정을 제어하지 못한 채 밀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김 대표는 이번 공천이 청와대와 친박근혜계 뜻에 맞춘 ‘권력자 공천’, ‘전략공천’으로 전락했는데도 김 대표가 이렇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두고 당 안팎의 비난이 들끓자 이날 결국 반격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비박근혜계와 친유승민계가 줄줄이 공천 배제되는 와중에 김학용·김성태·권성동 의원 등 김 대표의 측근들은 컷오프(공천 배제)를 면한 터라, ‘친박계와의 뒷거래’ 의혹까지 일고 있는 상황이다.
이재오·주호영 등 현역탈락 9곳
회견 자청 ‘원칙없는 공천’ 비판
측근들 공천 ‘뒷거래’ 비판 의식
대선국면 우호지분 확보 속셈도 최고위 친박 다수…뒤집기 역부족
‘옥새투쟁’ 강경카드 가능성 희박
이한구 “뒤에가서 저런다” 꼬집어
김 대표는 이날 오전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는 우리 당의 상향식 공천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의결을 보류하고 정회를 선언했다. 친박계 최고위원들도 일단은 김 대표의 결정에 적극적인 반대 의사는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 이후 당권 경쟁과 내년 대선 국면에서 ‘우호 지분’을 최대한 확보할 필요가 있는 김 대표로서는, 더욱이 청와대와 친박계의 의중이 깊게 드러난 이번 공천 결과에 또다시 ‘굴신’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유승민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김무성 대표를 믿지 않는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는 상황이었다.
김 대표는 앞서 이날 국회에서 소상공인연합회 주최로 열린 한 행사 인사말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는 자른다고 참 고생하고, 저는 우리 동료들 잘리지 못하게 하느라 고생하는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해, 현역 공천 배제를 최소화하느라 노력했음을 에둘러 내비치며 진화에 나서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김 대표가 공관위 결정을 뒤집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당내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최고위와 공관위 모두 친박계가 다수를 점하고 있어, 김 대표가 가진 수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공언한 대로 공천장에 당 대표 직인 날인을 거부하는 ‘옥새 투쟁’도, 총선을 앞둔 시간 제약과 여론 부담 때문에 현실화 가능성은 미지수다. 당내에서는 “김 대표가 ‘팔짱만 끼고 있을 것이냐’는 주변의 압박을 의식해 엄포를 놓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일종의 ‘면피성 반격’이라는 것이다.
이한구 공관위원장은 기자들에게 “(김 대표가) 어떤 때는 알아듣고 뒤에 가서 저런다”고 김 대표의 기자간담회가 형식적 행위라고 비꼬았다. 김 대표의 발언에 대해 “바보 같은 소리”라고도 했다. 이 위원장은 “공관위의 결정들은 (김 대표 쪽인) 황진하 사무총장과 홍문표 부총장이 참여한 가운데 만장일치로 결정된 것이다. 그러니 내가 열이 난다. 도저히 못 참겠다”며 김 대표의 뒤늦은 문제제기에 거듭 불만을 드러냈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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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영상] ‘박근혜 왕정’과 ‘상왕식 공천’/ 더 정치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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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6일 오후 ‘공관위가 원칙도 없이 현역 의원들을 공천에서 배제했다’는 뜻을 밝히기 위해 국회 대표실로 들어서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김 대표의 발언 뒤 곧바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공천에서 탈락한 주호영 의원에 대한 최고위의 재의 요구를 “반려한다”고 발표한 뒤 기자실을 나서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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