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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광장의 다양한 목소리가 현실정치에 담길 수 있게 고민해야”

등록 2016-12-14 22:00수정 2016-12-14 22:07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촛불민심·탄핵보도 평가
촛불에 어젠더를 던지지 않고 생생한 의견 전달·의미 부여 돋보여
탄핵국면에서 나갈 방향 제시도
이제는 시민혁명을 어떻게 시민정치로 담아낼지 논의해야
검찰·재벌·정치 등 적폐현상을 징비록처럼 기록하고
잘못을 반성해 새로운 대안 구체적으로 내놔야
개헌과 개혁의지를 감당할 수 있는 다음 대통령의 모습도 제시를

12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열린편집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2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열린편집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 한 달간 국민과 싸우는 대통령의 민낯이 생생히 드러났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민심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상황을 모면하려는 데 급급했다. 우왕좌왕하는 정치권을 탄핵으로 이끈 힘은 수백만 촛불 민심이었다. 지난 9일 국회에서 압도적으로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권력도 민심을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 위원들은 <한겨레>가 지난 한 달간 촛불 민심을 자의적으로 주도하려 하지 않고 뒤에서 충실히 반영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여러 특종과 차별화된 심층 분석 기사도 돋보였다고 했다. 위원들은 촛불 민심 에너지를 관료제 적폐, 박정희 시대 종언 등 사회 전반의 개혁으로 이어가는 데 한겨레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촛불 민심에 대한 추상적 분석에 그치지 말고 현실정치에서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2일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서 진행된 제6기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 7차 회의 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정현백 위원장 오늘은 탄핵과 촛불을 중심으로 얘기하기로 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까지 촛불 시민의 역할도 있었지만 언론, 특히 한겨레가 초기에 분위기를 만들어 준 역할이 컸다. 한겨레 역할을 다시 한 번 치하하고 싶다.

이승열 위원 촛불 민심에 대해 한겨레가 1면 사진과 사설을 싣고, 릴레이 특별기고 등 여러 기사를 통해 상당히 비중 있게 담았다. 한 달간 한겨레는 ‘촛불 민심 편집’이었다. 촛불 민심이 놀라운 건 평화적으로 질서 있게 추진한 것이다. 한겨레도 긍정적 보도를 해 평화시위로 자리 잡는 데 일조했다. 한겨레가 앞으로 촛불 민심을 완성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면 좋겠다. 첫째, 검찰·교육 등 사회 곳곳의 적폐 현상을 징비록처럼 기록해 잘못된 부분을 반성하고 새로운 대안을 끌어내 이를 코너별로 만들어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또 하나는, 지금까지 촛불 민심은 ‘이런 대통령은 안 된다’는 데 포커스가 맞춰졌다. 탄핵 의결 뒤엔 ‘다음 대통령은 이런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의견을 모으는 게 바람직하다. 개헌이나 사회 도처에 널린 개혁 의제를 감당할 수 있는 대통령 모습을 언론에서 제시해야 한다.

위원장 이승열 위원 제안을 들으면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박근혜 정권 조력자들’이란 이름으로 한겨레가 여태까지 쓴 기사를 모아 책으로 내면 어떨까.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조력해 거대한 시스템이 굴러가는지 그동안 기사를 정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백미숙 위원 이승열 위원은 한겨레를 ‘촛불 민심의 대변지’라고 했는데, 저는 ‘촛불혁명의 기관지’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의 목소리를 많이 담으려고 애썼다는 느낌이다. 릴레이 특별기고, ‘국정농단 이것이 민심이다’ 기획뿐 아니라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 목소리를 다양하게 들었다. 그리고 촛불집회에 나갈 때 필요한 정보를 다룬 기사(11월12일치 12면)는 처음 집회에 발 내디딘 사람에게 안내서가 돼 유용했다.

과거 한겨레 제목은 모호한 게 많고 논지가 잘 와 닿지 않았는데, 이번 탄핵 국면에선 나갈 방향을 제시하고 핵심을 짚었다. 예를 들어 ‘촛불은 더 큰 민주주의를 꿈꾼다’, ‘촛불혁명 진짜 시작’, ‘탄핵 외 더 방법 없다’, ‘190만 촛불, 꼼수로 응답한 대통령’ 등은 메시지가 명확했다. 바빠서 기사를 정독하기 힘든 사람들한테는 카드뉴스 등의 포맷이 유용하다. 에스엔에스를 많이 활용하면 좋겠다.

이승희 위원 촛불시위가 단일화된 목표를 향해 나가는 데 반해 정치권은 이합집산이었다. 정치권이 이해관계를 따지는 모습을 한겨레가 좀 더 날 서게 비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촛불정국 마무리 시점엔 민심과 시민의 주도성에 대비되는 정치 후진성의 원인, 대안을 근본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탄핵 이후 촛불집회의 대중적 동력이 떨어질 것인데 그 부분이 연착륙하게끔 한겨레가 두 가지 역할을 하기 바란다. 첫째는 진짜 다양한 여론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보수이면서도 집회에 나온 사람들이 원하는 바 등 집회에서 나온 여러 주장의 최소공배수를 찾는 노력을 해달라. 그리고 검찰개혁, 재벌개혁, 정치개혁을 보다 구체적으로 다뤄주는 게 필요하다. 최순실 사건에서 가장 큰 문제는 관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청와대 인사가 어떻게 구성되고 인사 검증이 안 됐는지, 관료 인선에 어떤 작동 기제가 있었는지 두 가지 측면을 주목해 봐달라.

홍성일 위원 한겨레가 촛불에 어젠다를 던지는 게 아니라 시민 의견을 충실히 따라 광장의 의견을 전한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광장 민심을 정치적 의도로 읽으면 여론 역풍을 맞을 수 있었다. 이번엔 언론이 시민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토대로 시민이 정치적 의사결정을 하고 언론이 이를 다시 받았고 국회가 또 그를 받아 자기 역할을 했다. 이런 메커니즘이 앞으로 시민사회가 성숙하고 발전하는 데 유용한 지침이 될 것이다.

다만 ‘동원의 정치학’이 작동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번 사안은 피아 전선이 명확했고 워낙 (대통령이) 잘못했다. 상대적으로 손쉽게 (시민을) 동원할 수 있는 문제였다. 따지고 보면 훨씬 더 이전에 시민사회 논의가 모였어야 할 이슈가 있었다. 사드, 개성공단 문제 등에서는 시민사회 정보 흐름, 정치적 논리가 작동하지 못했다. 이제부턴 시민의 의견을 어떻게 정치권에 전할 건가 다른 논의가 있어야 한다. ‘촛불 만능론’으로 얘기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 촛불엔 성과도 있지만, 동시에 우리가 가진 한계를 가리는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이 놓치는 문제를 논의해봐야 한다.

이상재 위원 연일 국정농단 관련 속보·특종이 나오는데, 한겨레는 종이신문으로서 분석과 가치의 설계에 중점을 둔 좋은 기사들이 돋보였다. 사설 등을 통해 고비마다 한겨레가 옳은 얘기를 했다. 탄핵되고 나서 국회가 주도해야 한다거나, 헌재 결정을 빨리 해야 한다는 사설은 두 흐름의 맥락을 정확히 짚었다.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이 어떻게 폴리페서로 소비되고 발전하는지 다룬 기사(11월26일치 19면)가 상당히 흥미로웠다. 일반 시민은 촉망받는 교수들이 왜 저렇게 무너질까 궁금증이 있었다. ‘4·19혁명의 함성은 과도정부에서 어떻게 사라졌나’(11월19일치 16면) 기사 역시, 이 국면이 4·19혁명과 유사한 측면이 있어서 배울 점이 많았다. 다만 기사 내용이 조금 더 강화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 외 ‘친절한 기자들’ 코너에서 촛불 이후 정치권에서 나오는 여러 궁금증을 해소해줬다. ‘촛불이 커질수록 대중들은 똑똑해졌다’는 기사(12월10일치 18면)도 실제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분석했는데, 특히 서울뿐 아니라 지역 시위 목소리를 반영해 좋았다.

이승희 국정조사 청문회 과정에서 다른 언론이 국회의원들의 발언을 상투적으로 비판하는 것에 비해 한겨레는 청문회의 핵심적 내용을 끄집어내 의미 부여하는 보도가 좋았다. 앞으로 청문회가 남았으니 꼼꼼하게 모니터링하면 좋겠다.

위원장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이 고영태 증인을 앉혀놓고 최순실과 사적 관계를 묻는 것은 정말 격이 떨어졌다. <한겨레>라면 품격을 지키자고 얘기해야 한다.

위원장 명사 논평을 보면 한겨레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들 중심이라 “그 사람 또 나왔어?” 하게 된다. 내용을 들여다봐도 명사들이 한 얘기보다 시민단체의 얘기에 더 중요한 메시지가 있었다. 그런데도 시민단체보다 명사들의 의견이 더 비중 있게 다뤄졌다. 이런 부분은 조정해달라. 촛불시위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중앙일보>는 장덕진 교수가 시위 참가자 1000명을 설문조사해 “고소득 고학력 젊은층이 집회에 나왔다”고 분석한 결과를 실었다. 한겨레도 촛불집회의 구조적인 분석을 하면 좋겠다. 촛불집회에 대한 성찰도 짚어야 한다.

이승희 전문가 25명을 인용한 평가 기사가 있었다. 시민혁명을 어떻게 시민정치로 담아낼 것인가 하는 논의였는데 그런 논의는 오래됐고 늘 대안 없이 끝났다. 이번에도 그런 논의가 반복되고 현실적으로 들어가는 부분이 없어 아쉬웠다.

위원장 이번 촛불집회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보수-진보 이분법 구도를 깬 데 의미가 있다. 이것을 어떻게 국민적 합의로 갖고 갈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한겨레가 ‘이분법을 깨자’는 얘기를 강하게 던져볼 필요가 있다. 이제 박정희 시대도 끝나야 한다는 얘기를 특집으로 해야 한다. 또 이번 집회에서 젊은 세대들이 나온 것은 과거와 달리 정치화된 부분이 있다. 앞으로 10~20년 뒤 한국 사회의 주역이 될 젊은 세대의 정치화 경험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분석하는 특집도 필요하다.

홍성일 촛불집회가 특수한 국면에서 이룬 성취이지만 보편적인 해법은 아니다. 한겨레가 촛불을 시민혁명이라고 칭하는데 과분하지 않나 생각된다. 트랙터 몰고 온 농민들은 이 시민혁명에서 소외됐다. 대도시 집회의 스펙터클을 얘기할 때 일상의 실천 부분은 빠져 있다. 한겨레가 광우병 촛불소녀를 찾겠다고 ‘알림’을 냈는데 걱정스러웠다. 찾아서 뭘 하겠다는 것인지, 낭만적 서사를 구축하려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승희 촛불시위를 사회학자들이 추상적으로 분석하고 의미 부여하는 것은 현실적 의미가 없다고 본다. 정치권이 왜 그렇게 됐는지 정치학적 분석이 더 담기면 좋겠다. 국민소환제 등 직접민주주의 요소가 한계가 있다는 부분과 맥이 닿을 수 있다. 시민들은 정치권을 압박하기 위해 세를 모아야 하니 스스로 평화롭게 하려고 했다. 이번에 평화집회가 부각되는 건 시민 스스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패러다임이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정치 제도적 한계도 짚어줘야 한다.

이유주현 정치팀장 정치 기사를 쓰면서 ‘보수는 깨지지 않는다’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 탄핵 전망도 비관적이었는데 12월3일 촛불 이후 새누리당 비박계가 움직이는 걸 봤다. 시민의 정치적 역동성을 정치 기사가 반영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 이 국면에서 야권 대선주자가 부각되지 못한 것은, 참된 지도자가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지나친 정쟁화를 막는 순기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어떻게 보완할지 고민하겠다.

임석규 총괄기획에디터 이번 국면에서 민심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두고 논설위원들과 편집위원들이 모여 두어 차례 브레인스토밍을 했다. 기사 방향과 논조를 정하는 데 도움이 됐다. 촛불 민심 분석을 교수 몇 사람 코멘트로 할 일이 아니다. 촛불 민심에 대한 구조적, 과학적 분석도 시도하겠다. 박정희 신화 종언 문제도 천착해볼까 한다.

위원장 사회개혁 의제 가운데 검사장 직선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적극적으로 다뤄주면 좋겠다. 국민은 검찰에 대한 분노가 높다. 더 참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승희 그러나 만약 서울중앙지검장을 선거로 뽑으면 지금보다 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거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상재 핵심은 검찰 힘 빼기다. 그중 하나가 직선제이고, 또 하나는 수사-기소권 분리도 있다.

위원장 교육감 선거가 없었으면 국정교과서 이렇게 싸울 수 있었겠나. (검사장 직선제 문제를) 편집국에서 논의해보면 좋겠다.

정리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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