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국회·정당

사진을 보면 감이 온다

등록 2017-02-10 20:09수정 2017-02-10 20:25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월20일 오전 국회를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과 이야기하던 중 보도진이 퇴장하길 기다리며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월20일 오전 국회를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과 이야기하던 중 보도진이 퇴장하길 기다리며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친한 친구 한 명은 유난히 내기를 좋아한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열리면 물 만난 물고기다. 그 친구가 지난해 열린 리우올림픽 때 폐막 5일을 앞두고 건 내기(한국이 금메달 10개를 딸 것인가 말 것인가)는 백미였다. 결과는 9개, 절묘한 승부수였다. 종주국인 태권도에서 마지막 금메달을 추가하지 못한 것이 그 친구에겐 결정적인 승리(?)의 요인이었다. 그 친구의 내기는 꼭 스포츠에 국한되지 않았다. ‘○○전자 주식이 얼마를 돌파한다’든지 ‘총선에서 ○○당이 몇 석에서 몇 석 사이를 얻는다’든지, 심지어는 알콩달콩 잘 사귀고 있는 연예인 커플이 ‘얼마 동안이나 갈지’ 등, 분야도 다양했다.

이 친구의 내기 제안이 촉발되는 경우는 대부분 이런 식이다. 어떤 주제로 얘기를 풀어나가다 확신에 찬 발언을 하면 주변의 몇몇 친구들이 ‘에이~’ 그러면서 부정을 한다. 그러면 이 친구는 나름대로 논거를 대면서 상대방에게 되묻는다. “너, 나랑 내기할래?”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비로소 내기가 성립되고 주변의 사람들은 증인이 되며, 내기 참가자는 물론 주변인까지 참가하는 단체방을 만들어 내기의 내용을 상세히 적은 문자를 날려 나름대로 공증절차도 거친다. 촉도 좋은 편이어서 비교적 승률도 높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귀국한 뒤 며칠이 지나 친구들끼리 식사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무슨 감이 왔는지 내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갑자기 “반기문은 설이 지나면 반드시 사퇴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다른 친구들이 반론을 폈다. 끝까지 사퇴 안 할 거라는 사람부터 사퇴는 해도 대선 직전이라는 사람, 대통령이 된다는 사람까지 여러 의견이 쏟아졌는데 결론은? 내기. 내기 주제는 단순화돼서 ‘반기문이 대선에서 후보 번호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그 전에 사퇴할 것인가’로 결정됐다. 며칠 뒤 결과는 촉이 좋은 그 친구의 승.

이제 와서 반 전 총장의 며칠 전 사진을 보자니, 대선 레이스를 끝까지 완주하지 못할 것이라는 감이 오긴 했었다. 오로지 사진만으로 볼 때 말이다. 지난 1월20일. 반기문 전 총장이 국회를 방문해 정세균 의장과 만나는 날이었다. 추락하는 여권에 구세주처럼 등장한 범여권의 후보라고 모두가 인정했다. 당연히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을 끌었다. 그가 하는 말과 행동, 만나는 사람 모두가 보도의 대상이었다. 국민도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한 범여권의 후보에 대해 궁금하긴 마찬가지이니 당연히 질문도 쏟아졌다. 불편한 질문도 마구 던져졌다. 험난한 가시밭길을 택한 것은 본인이니 누굴 원망할 필요도 없었다. 평소 소신대로 대답하고 국민의 판단에 맡겨야 했다. 그런데 반 전 총장은 꿀처럼 달콤한 말이 아니면 몹시 거북해했다. 각종 의혹 보도엔 속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요리조리 피해나갈 구멍만 찾았다.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은 아예 받지도 않겠다고 공언까지 하면서 그 질문을 던진 기자를 졸지에 ‘나쁜 놈’으로 취급했다. 정세균 의장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취재진의 정리를 기다리는 반 전 총장의 얼굴에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이 가득하다. 통상 정치인들은 표정변화가 없고 구렁이급 정치인은 저 순간에도 쉬지 않고 말잔치를 늘어놓는 것과는 대조적이다(꼭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꽃길 같은 여권 후보를 기대하고 돌아왔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 듣기 싫은 질문들뿐이라니…. 곤란한 자신의 처지가 표정에 묻어난다. 사퇴 발표 후 정치철학도 새로운 비전도 없이 오직 무임승차만 엿봤다는 혹독한 평가가 나왔다.

난 내기에서 어떻게 됐느냐고? 20여일 만에 전국을 흔들고 기름장어처럼 빠질 줄은…. 이렇게 감이 떨어지면서 책상보전하고 있으니.

윤운식 사진에디터 yw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연차 1개만 쓰면 9일 연휴?…1월27일 임시공휴일 지정 검토 1.

연차 1개만 쓰면 9일 연휴?…1월27일 임시공휴일 지정 검토

주한미군 ‘10배 청구서’ 꺼내 든 트럼프…한반도의 위험이자 기회 2.

주한미군 ‘10배 청구서’ 꺼내 든 트럼프…한반도의 위험이자 기회

친윤 이철규, 국수본부장에 “윤석열 체포 지원 땐 책임질 수 있어” 3.

친윤 이철규, 국수본부장에 “윤석열 체포 지원 땐 책임질 수 있어”

윤석열의 적은 한동훈? “영장집행 힘으로 막는 건 범죄” 4.

윤석열의 적은 한동훈? “영장집행 힘으로 막는 건 범죄”

윤, 훈련병 영결식 날 술자리…이재명 “진정한 보수라면 이럴 수 있나” 5.

윤, 훈련병 영결식 날 술자리…이재명 “진정한 보수라면 이럴 수 있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