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가을은 국정감사와 함께 흘러간다. 국감의 계절에 가장 풍성한 수확을 맺은 이가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9월25일부터 10월12일까지 이철희 의원이 종합일간지 1면에 등장한 것은 모두 7차례에 이른다. 이 의원 자료를 보도한 매체 성향도 다양하다. <한겨레>와 <제이티비시>(JTBC)에는 사이버사 댓글공작 배후로 김관진 전 청와대 안보실장을 정조준하며 이명박 전 대통령을 ‘호출’하는 기사가 실렸고, <조선일보>엔 북에 해킹된 ‘작계 5015’(한·미 연합군 작전계획)에 군사기밀 295건이 포함됐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중앙일보>는 군 사이버사의 문재인·이효리 등 유명인 사찰 등을 다뤘다. ‘월천거사’(한달에 천만원씩 번다)로 불리며 방송인으로 잘나가던 그가 ‘국방 전문가’로서 정책 국감의 선봉에 서게 된 비법은 뭘까?
■ 합리적 의심으로 물고 늘어지기 이 의원의 ‘현란한’ 활약상을 두고 국회 안팎에선 “청와대가 자료를 몰아준다더라”, “국방부가 그냥 갖다 바친다더라” 등 숱한 ‘카더라’ 의혹이 난무하다. 야당의 한 의원은 “100% 제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이 의원이 가장 억울해하는 지점이다. 그는 “국방위 등에서 이미 주요하게 다뤘던 의제들을 열심히 파고든 것뿐”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사이버사 댓글공작과 작계 5015 해킹, 사드 ‘알박기’ 등이 아주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다만 이 의원은 여기서 한 단계 넘어 ‘확증’을 찾아내는 데 주력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사이버사 댓글공작을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이나 청와대 재가 없이 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잖아요. 김 전 장관과 청와대의 개입 흔적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쑤셨고 그 과정에서 문건을 입수하게 된 거죠.” 서둘러 배치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를 누가 주도했는지도 국방위의 단골 소재였다. 그는 “대통령이 부재한 상황에서 외교적 딜레마를 일으킬 수 있는 사안이 갑자기 결정됐다. 이건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에 물고 늘어졌다”며 “결국 ‘(청와대) NSC(국가안전보장회의)서 조기배치 가속화’라는 문구가 포함된 문건을 찾아냈다. 6개월 가까이 추적한 사안을 팩트로 확인하는 순간, ‘아, 이거다’ 하는 카타르시스가 있더라”며 웃었다. 북한에 유출된 ‘작계 5015’ 역시 해킹 사실 자체는 지난해부터 이미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목록을 확인한 것은 ‘꺼진 불 다시 보기’의 성과다. 유출 목록을 요구하는 이 의원에게 국방부는 “작전영향평가를 해봤는데 별거 아니다”라는 답변만 반복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국방부에 계속해서 목록을 요구했고 ‘김정은 참수작전’ 등 주요 군사기밀의 유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기밀 목록을 공개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만만찮았다고 한다. 여당 내 일부에선 “한·미 군사기밀 세부사항을 공개한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의원은 “공개 여부를 두고 잠도 못 잘 정도로 고민했다. 하지만 군이 작계 유출 사실을 확인하고도 후속 조처를 취하지 않아 경고하는 차원에서 공개를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 마케팅도 전략이다 그는 국감의 자료 홍수 속에 힘들게 마련한 아이템이 휩쓸려가지 않도록 적절한 마케팅 능력도 발휘했다. 이 의원은 ‘하고 싶은 말을 확실히 하려면 그 취지를 잘 이해할 수 있는 특정 언론사와 단독으로 충분히 얘기하고 교감하는 게 좋다’는 언론계 선배의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평소 각 언론사가 어떤 주제에 관심을 기울이는지 눈여겨보고 ‘맞춤형 포트폴리오’ 전략을 구사했다.
이 의원의 국감 활약이 화제가 되면서 “요즘 이철희 의원 기사 보는 재미에 신문, 뉴스 본다”는 동료 의원의 격려부터 “너 혼자 다 하냐”는 투정, “이 의원, 여당 된 거 모르는 거 아냐”라는 야당 의원의 농담 섞인 얘기까지 이 의원 귀에 들려온다. “창고 대방출이냐”며 이 의원의 ‘서랍 속 자료’를 궁금해하는 이들도 여럿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무엇보다 이번 국감의 최대 성과로 ‘이철희, 일 좀 하네’라는 평가를 얻은 점을 꼽는다. 그는 “‘방송인’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방송 출연도 자제하고 당의 전략가 구실에 충실했는데, 밖에서 볼 때는 별 존재감이 없어 보인 게 사실”이라며 “주변에서 ‘이철희, 너 뭐 하냐’는 지적을 받는 게 마음이 아팠다. 좀더 분발해야겠다 생각했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고 말했다.
최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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