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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시민의 해법으로 사회갈등 출구…숙의민주주의 큰걸음

등록 2017-10-20 21:03수정 2017-10-20 22:15

한국사회 갈등해소 새모델 주목
숙의 기간·공정성 등 한계 지적도
13일 충남 천안 계성원에서 열린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 2박3일 종합토론회에 참석한 시민대표참여단 471명이 토론회 방식과 진행 경과보고를 듣고 있다. 천안/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3일 충남 천안 계성원에서 열린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 2박3일 종합토론회에 참석한 시민대표참여단 471명이 토론회 방식과 진행 경과보고를 듣고 있다. 천안/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20일 석달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해산했다. 공론화위는 숙의 과정을 통해 지역-환경-세대 등의 이슈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던 신고리 5·6호기 건설과 관련해, 일단 건설을 재개하되 장기적으로는 원전을 축소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권고안을 정부에 전달했다. 특히 찬반 진영 모두 권고에 대한 수용 의사를 밝히면서 사회적 합의를 통한 갈등 해소의 새 역사를 썼다. 문재인 정부의 1호 숙의민주주의 실험인 ‘공론화’ 작업이 한국 사회의 새로운 갈등관리 모델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정치권과 이해당사자가 아닌 일반 시민 471명으로 이뤄진 시민참여단이 합숙까지 해가며 집중적으로 학습하고 숙의한 끝에 국가의 주요 정책이자 첨예한 사회갈등 사안에 대한 해법을 결정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비록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선언했지만 이를 정부 차원에서 밀어붙이거나 전문가의 영역에 두지 않고 시민참여단의 숙의와 토론을 통해 결정한 것이다. 시민이 직접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시민주권주의’의 첫 실험인 셈이다. 김지형 공론화위원장은 “시민 대표가 참여해서 숙성된 의견을 수렴한 민주적 의사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시민들의 참여 열기도 뜨거웠다. 참가 의사를 밝힌 500명 중 478명이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고, 2박3일 동안 진행된 합숙토론에는 471명이 참석해 94%의 참석률을 보였다. 시민참여단의 토론 과정을 지켜본 공론화위 관계자는 “토론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내놓은 결과가 정부 정책에 반영된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됐고, 합숙토론 내내 굉장히 높은 몰입도와 진지함을 보였다”고 말했다. 공론화위 활동이 주요 이슈로 떠오르면서 탈원전 및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동시에 ‘결론’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도 함께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 위원장(왼쪽)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를 만나 공론화위의 조사 결과 내용을 담은 정책권고안을 전달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 위원장(왼쪽)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를 만나 공론화위의 조사 결과 내용을 담은 정책권고안을 전달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공론화가 시민 대표가 참여하고 숙성된 의견을 수렴하는 민주적 의사형성 절차인 만큼, 시민에게 집행되는 국가권력이 민주적으로 행사될 수 있도록 ‘보완’하는 구실도 하게 됐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역시 공사 재개와 중단 주장이 첨예하게 맞붙었지만, 공론화라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면서 결론에 ‘승복’할 수 있는 정당성과 명분을 마련하게 됐다. 환경운동연합, 경실련 등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반대하던 단체들은 권고안 수용 의사를 밝혔다.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는 “지금까지 정책결정 과정에서 시민 참여는 관료와 전문가들의 정책결정에 들러리로 악용되는 사례가 많았다. 이번 공론화 장이 열리면서 시민들이 우리 사회의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숙고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동적 시민’으로 재탄생했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 공론조사 모델이 활용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지형 위원장은 “시민 공론화가 정부 정책 등에 대한 승복 가능성을 높였다”고 평가하며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해결 방안도 시급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공론화의 핵심이 참가자들이 정보에 근거해 토론을 벌이는 ‘숙의’에 있는 만큼, 이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와 같은 형식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형태의 ‘숙의형 합의 추구’ 모델을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찬반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보다, 공론화 과정을 통한 참가자들의 의사변화를 추적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둬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이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처럼 대규모로 진행해야 할 사안도 있지만, 시민배심원단 등 숙의형 협의를 다양한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럿 개발돼 있다”며 “공론화가 비용이 많이 들고 힘들다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갈등관리를 하지 않아 벌어지는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면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최혜정 노지원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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