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야당’ vs ‘한국당 2중대’ 이견 속 잇딴 의총
여야 합의 무산되자 밤 9시반 ‘철야농성’ 돌입
다음날 아침 ‘속전속결’로 농성 종료
“치열하게 하되, 한국당처럼 하지 말자는 것”
8일 밤 국회 본청 245호 회의장에 마련된 ‘철야 농성’ 대비 침낭과 베개. 송경화 기자
# 8일 오전 9시, 국회 본청 245호 의총장
5시간 남았다. ‘8일 오후 2시’는 정세균 국회의장이 제시한 국회 정상화 협상 시한이다.자유한국당은 원내대표가 6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소통하는 메신저 ‘바이버’ 방에서 일부 의원들은 불만을 제기하고 나섰다. ‘우리는 뭐하고 있냐’는 취지였다. 여야 원내대표들의 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회의장에 모였다. 비공개 의총을 진행했다. 10시30분, 국회의장 주재 원내대표 회동이 있었지만 김동철 원내대표는 이 시각을 넘겨가며 의총을 이어갔다. 같은 시각 국회 본청 3층 국회의장실에선 정 의장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노회찬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원내대표가 자리에 앉아 김동철 원내대표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여느 회동때처럼 안부 인사나 사담은 없었다. 침묵만 흘렀다.
11시께 바른미래당 의총이 끝났다. 결론을 못 내렸다. ‘강경 대응론’과 반대 의견이 부딪혔다고 한다. 오후 2시30분 의총을 다시 열기로 했다. 평소 ‘강한 야당’을 주장하던 한 의원은 의총 뒤 “결국 아무것도 안하고 시간만 보낸 채 이제 와서 차선책이 무엇일지 논의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자유한국당과 달리 가기 위해 우린 지금 국회 정상화를 얘기해야 한다는 의원들이 있었는데 그건 정치 철학이 없는 행보”라며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드루킹 건이 그렇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은 “그래도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냐”라며 “철야 농성 얘기가 나왔는데 이것도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농성 등 ‘액션’을 취하는 데 반대하는 의원들도 적잖았다. “자유한국당 2중대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한 의원은 “드루킹 특검에 일반 국민들이 얼마나 공감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민생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더 낫지 않겠냐”고 말했다. 일각에선 ‘강경 투쟁’에 반대하는 게 마치 ‘드루킹 사건’ 피해자라고 당에서 강조해온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를 지원하지 않는 것처럼 해석하는 당내 시각이 있다며 불편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8일 오후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단식 농성장을 찾아간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송경화 기자
# 오후 3시, 김성태 원내대표 농성장
오후 2시30분부터 추가 의총을 진행하던 김동철 원내대표가 갑자기 회의장 밖으로 나왔다. 그는 김성태 원내대표가 단식 농성을 하는 국회 본청 앞 천막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10여분의 회동 뒤 김동철 원내대표는 “우리하고 자유한국당이랑 의견이 다르면 안 되기 때문에 서로 중간 점검을 했다”고 말했다. 두 야당이 단일대오를 취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다시 의총장으로 돌아갔다. 협상 타결을 장담할 수 없는 가운데 당내 대응책 논의가 계속됐다.
오후 의총에선 결론이 나왔다. “협상 상황을 보되 오늘 밤 철야농성을 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농성 장소는 의총을 진행했던 본청 안 245호로 결정했다. 의총을 마친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단식 농성’ 천막을 지나 의원회관으로 향하자, 천막 인근에 있던 ‘옛 식구’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 하 의원은 “철야하기로 했다”고 답했다.
오후 5시30분, 여야 원내대표 회동이 다시 잡혔다. 직전 김동철 원내대표와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원내대표실에 모여 의견을 막판 조율했다. 오 수석이 전화 통화를 위해 들락날락하는 가운데 김 원내대표의 고성이 문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게 박근혜 정부때랑 뭐가 다르냐고요!” 화가 난 목소리였다.
여야 원내대표들이 다시 모였다. 이 자리에서 김성태 원내대표가 ‘특검법과 추경안 14일 동시 처리’를 제안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민주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밤 9시10분께 김동철 원내대표는 의원들에게 “협상 최종 결렬”을 알렸다. “이에 철야 농성에 돌입할 예정이오니 전원 참석해달라”는 메시지가 의원들에게 전송됐다.
# 밤 9시30분, 다시 국회 본청 245호
245호에 의원들이 다시 모였다. 결국 철야 농성이 시작됐다. 이날 의총에서 대응책 논의를 시작한지 12시간 만이었다. 245호 구석에는 베개와 침낭, 바닥에 깔 매트가 놓여 있었다. 신용현 의원은 쇼핑백을 들고 왔다. “담요를 챙겨왔다”고 했다. 지상욱 정책위 의장은 점퍼 차림에 두꺼운 책 한 권을 들고 나타났다. 오세정 의원은 바른미래당이 적힌 민트색 점퍼를 입고 노트북을 들고 왔다. 정병국, 이찬열, 이태규 의원 등도 점퍼 차림이었다. 종일 협상을 벌인 김동철 원내대표는 “특검이 민주당과 청와대에 무섭기는 무서운 모양”이라며 “청와대와 민주당이 보다 전향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기 전에 저희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의원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이언주 의원은 민주당을 향해 “말도 안 되는 짓거리 집어치우라”고 했고, 김중로 의원은 “저희가 정말 끝까지 (국회의원) 배지를 걸고서라도 끝장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회의장 바닥에 매트가 깔렸다. 30명 가운데 24명이 철야 농성에 응했다. 국민의당 출신 의원들에게는 같은 장소 두번째 철야였다. 2016년 12월 채이배 의원 등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며 이 곳에서 침낭을 깔고 잤다.
9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규탄 결의문을 발표하는 바른미래당 의원들. 직후 농성은 종료됐다. 송경화 기자
다음날인 9일 오전 7시 신용현 의원은 수석대변인 명의로 논평을 냈다. “바른미래당은 우리 국민이 원하는 바로 그 진실, 민주당이 국회를 일방적으로 파행시키면서까지 지키고자 한 댓글조작사건의 진실을 반드시 찾을 것이다. 이에 바른미래당은 특검관철과 국회 정상화를 위한 무기한 철야농성에 즉각 돌입한다.” 결의에 찬 내용이었다. 농성을 언제까지 한다는 것인지 궁금해하며 취재진들은 오전 9시에 예정된 의원총회를 기다렸다.
다시 245호. 깔개와 침낭은 한 쪽에 치워진 상태였다. 지도부의 모두발언이 끝난 오전 10시, 의원들은 “드루킹·김경수 게이트 특검 거부하는 민주당을 규탄한다”는 결의문을 낭독했다. 10시20분에 의총이 끝났다. 이번엔 속전속결이었다. 의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본청을 떠나던 김동철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이제 현장속으로 가서 대국민 서명운동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철야 농성은 이것으로 끝났다는 것이었다. “하루만에 철야 농성을 끝내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정말 치열하게 하되, 자유한국당처럼 하지 말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동철 원내대표 앞 쪽으로 자유한국당의 농성 천막이 보였다. 그는 “저렇게 천막을 쳐놓고 하는 방식은 맞지 않고 우리가 적시에 우리 뜻만 전달됐으면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건 대국민 서명운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서명운동이) 국민과 하는 것이니 그걸 하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농성 종료와 관련해선 “아침까지 박주선·유승민 공동대표와 제가 논의했다”며 종료 여부는 이날 아침에 확정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농성장을 떠나던 한 의원은 “우리가 철야 농성 계속 해봤자 자유한국당이 단식까지 하는 판에 기사 한 줄이나 나오냐”며 “이제 서명운동을 하면서 선거운동 국면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한 야당’과 ‘자유한국당 2중대’의 고민 속에서 어렵사리 시작됐던 바른미래당의 농성은 이렇게 12시간여 만에 끝났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