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1천만명 시대에 비정규직의 처지를 바꿀 수 있는 힘은 비정규직 노동자 당사자에게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정치의 힘과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습니다.”
첫 비정규직 노동자 서울시장 후보인 김진숙(39) 민중당 후보가 20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출마의 변이다. 김 후보는 2009년 신세계 백화점 판매사원으로 시작해 2011년부터 홈플러스 영등포점 계산원 등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했고 민주노총 산하 마트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 서울본부장, 민주노총 서울본부 여성위원장,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 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홈플러스 영등포점에 적을 둔 채 휴직중이다. 지난 3월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인지도가 높은 이상규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꺾고 서울시장 후보가 됐다. 김 후보는 “‘가장 억압받고 우리사회의 모순을 담고 있는 비정규직이 스스로 정치 주체로 나서야 한다’, ‘촛불혁명을 거친 우리사회의 가장 유능한 정치인은 민중’이라는 뜻으로 당원들이 저를 선택해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 후보는 서울시가 당면한 핵심 문제를 “빈부격차와 양극화로 인한 불평등”이라고 진단하면서, “비정규직 없는 서울”을 처방으로 제시했다. 박원순 시장 7년 동안 마을공동체 사업과 서울도서관 등 “선한 행정의 대표적인 사업”이 있지만 “정작 야근과 주말노동 등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마을에 머물 시간이 없어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는 어떤 사업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서울시장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처우부터 챙기겠다고 했다.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가 변화되면, 일터와 가정도 변화되고 민주주의도 확장된다고 봐요. 무엇보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에 대한 삶의 처우는 시민들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죠. 우선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 없는 서울을 만들고, 서울시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민간으로 확대해가려고 합니다.”
김 후보가 선거운동을 다니는 곳도 주로 노동자들의 일터와 농성현장이다. 여성 직원들에게 사측이 폭언·폭행을 가하고 폐회로텔레비전(CCTV) 감시로 논란을 빚은 레이테크코리아(사무용 스티커 등 제조업체) 농성 현장, 최저임금을 밑도는 낮은 공임과 소사장제로 장기간 시달려온 제화 노동자들이 농성에 나선 봉천동 탠디 본사 등을 다녔다. 김 후보는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이 ‘우리는 평생 자유한국당만 찍었던 사람들인데 처지가 열악해 농성을 하다보니 정작 우리 편은 진보정당하는 사람밖에 없구나’라고 말하더라”며 “이런 반응에 힘을 얻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노조를 통해 노동자가 자기 권리를 찾도록 하는 게 정치가 해야할 일”이라며 “서울시 노조조직률을 5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김 후보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 외에도 △전기차 전봇대 충전소 설치·차량 공유 플랫폼 ‘부릉이’ 설립 등 미세먼지 없는 친환경 이동수단 확보 △‘노동자·시민 직접정치회의’ 구성을 통해 시정권력을 노동자·시민들과 공유 △서울-평양 산학협동을 통한 한반도형 실리콘밸리 조성 등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그는 ‘노동조합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후보는 “노동자가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지금 정치가 해야할 일”이라며 “서울시의 노조조직률을 5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를 위해 그는 “노조 설립과 지원을 서울시의 주요 사업으로 해야한다”고 했다.
지난 1970년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스스로 생을 마감한 지 반세기 가까이 지난 시점인 2018년에도 김 후보가 노조 설립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노조 설립은 헌법 33조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인데 우리나라는 (노조에 가입한) 10%국민만 그 권리를 누리고 있다”며 “노조결성을 통해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금 정치가 할 일”이라고 했다. 김 후보는 또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제가 노조가 있기 전과 후를 모두 직접 체험해 봤기 때문”이라며 그 경험을 풀어놨다.
“노조가 있기 전에는 몸이 아프면 진통제를 먹고 출근해야했고, 견디지 못하면 퇴사해야 했어요. 생계를 꾸려가는 입장에서는 가혹한 생존 조건이죠. 하지만 노조가 생긴 뒤에는 단체협약으로 몸이 아파도 유급으로 쉴 수 있는 권리가 생겼어요. 아파도 진통제를 먹고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몸이 다 낫고 나서 출근해 병원 진단서만 내면 되게 되었죠.”
김 후보는 마트 노동조합원으로서의 체험도 소개했다.
“마트 계산원들은 관리자 갑질 외에 고객들의 갑질에도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어요. 저도 고객들한테 욕설을 듣고 모멸감을 느껴본 적도 있고, 심지어 제 동료는 별다른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고객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희가 노조를 만들고 나서는 그런 불합리한 고객 갑질 앞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조처가 생겼어요. 고객이 욕설하면 우리는 관리자를 불러 응대를 맡기고 그 자리를 피할 수 있고, 고객이 사과를 요구해도 (우리가 직접) 사과하지 않아도 됐죠. 무자비하게 심한 욕설을 들으면 마음의 회복을 위해 유급 휴게 시간도 가질 수 있게 됐어요. 이런 일들이 2013년 홈플러스에서 노조가 설립되면서 일어난 큰 변화들이죠.”
홈플러스 영등포점 비정규직 마트 노동자인 김진숙 민중당 서울시장 후보가 4월1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응원을 받으며 지방선거 후보들과 함께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 민중당 제공
선거는 ‘희망과 비전’의 장이기도 하지만 ‘현실’이기도 하다. 김 후보에게 당선 가능성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러자 “당선 가능성보다 민중 직접정치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 후보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중당 후보 김진숙의 득표를 통해서 누가 서울시장에 당선되든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에 가장 먼저 찾아와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서울시정에 반영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이어 “어떻게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서울시장 도전이 무모한 도전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데 선거운동 현장에서 만나는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 후보’라고 반기면서 ‘당신같은 사람이 하는 게 맞다’며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후보는 지난달 11일 서울시장 출마선언을 하면서 ‘7530의 직접정치’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최저시급 7530원을 받는 비정규직·여성·청년 노동자 등 이 사회의 ‘을’들에게 스스로 직접정치에 나서자고 외쳤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묻자 김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김진숙에게 투표해 주세요. 김진숙을 찍어야 노동자 무시 못합니다.”
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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