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규제완화 정책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이른바 ‘제이(J)노믹스’의 세축인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가운데 하나인 혁신성장을 위해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것입니다. 올 상반기 이른바 ‘규제샌드박스법’을 발의했고, 하반기에는 인터넷 전문은행 활성화와 빅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를 추진 중에 있습니다. 이를 두고 여당 일부 의원과 시민단체는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고, 정부나 여당 일부 의원은 “답답하다” “한심하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내용은 무엇이고, 어떤 내용에서 차이를 보이는지 살펴봤습니다.
1차 규제완화
더불어민주당은 올초 규제완화를 위해 규제샌드박스법으로 일컫는 법안 5개를 발의했습니다. 규제샌드박스란 혁신적 신제품·서비스의 시장진입 필요성 등을 판단하기 위하여 해당 신제품·서비스에 대해 임시로 기존 규제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적용하지 않는 제도입니다. 예를 들면 카풀 앱으로 자동차 소유자가 카풀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다면 ‘자가용 유상운송 행위’에 해당돼 현재는 위법입니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81조는 ‘자가용 자동차를 유상운송 및 임대 알선을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카풀 앱이 신사업으로 규정받게 되면 운수사업법 적용에서 제외가 되는 식입니다.
규제완화를 위한 법은 총 5개로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민병두 의원 발의), 금융혁신지원 특벌법 제정안(민병두 의원 발의), 산업융합촉진법 개정안(홍익표 의원 발의),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신경민 의원 발의),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특례법 전부 개정법률안(김경수 의원 발의) 등입니다.
각 법안의 주요 내용으로는, 신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서비스와 제품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허용하되 사후적으로 규제하는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하고, 금융분야에서 혁신과 경쟁을 촉진해 혁신성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도입 및 운영(금융혁신지원 특별법) 등이 있습니다. 또 새로운 융합 서비스 또는 제품에 대해 허가가 필요하면 신속하게 확인(산업융합촉진법 개정안)해주고, 국민의 생명·환경 및 개인정보가 침해받지 않는 범위 안에서 신기술·서비스는 먼저 시장 출시를 허용(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시·도에 지역혁신성장특구를 지정해 혁신적인 규제 특례를 부여(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특례법)하려고 합니다.
지난 3월 법안을 발의하기 전 정부와 여당 의원 간 갈등이 있었습니다. 우선허용·사후규제 원칙을 적용할 때 고려요소 때문이었습니다. 정부는 우선 허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조건을 ‘국민의 생명·안전을 저해하는 경우’만을 고집했습니다. 반면 여당 의원들은 조건을 더 늘리려고 했습니다. 결국 고려요소에 일부 조건이 추가됐습니다. 아울러 ‘제한할 수 있다’는 애초 정부 안은 당·정 협의를 거치면서 ‘제한하여야 한다’는 의무사항으로 바뀌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산업융합촉진법(제3조의2)과 정보통신융합법(제3조의2), 지역특구법(제4조)에는 ‘국민의 생명·안전·환경을 저해하는 경우에는 이를 제한하여야 한다’로 발의돼 환경이 추가됐고, 제한을 강제했습니다. 또 산업융합촉진법(제10조3)의 규제특례 제공시 고려사항도 애초 ‘안전성’만 있었지만, ‘국민의 생명ㆍ건강ㆍ안전ㆍ환경ㆍ지역균형발전 저해 여부 및 개인정보의 안전한 보호ㆍ처리’로 늘어났습니다. 지역특구법(제78조) 역시 ‘국민의 생명·건강·안전·환경·지역균형발전 저해 여부 및 개인정보의 안전한 보호·처리 등을 고려하여 심의하여야 한다’로 조건이 늘었고, 정보통신융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는 추가 조건에 불만을 나타냅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혁신성장을 위해 규제개혁을 하려는 것인데 조건을 덕지덕지 붙여놓으면 그게 가능한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조건을 추가한 의원들도 할 말은 있습니다. 한 의원은 “우리 당은 참여 정부 시절부터 지역균형 발전을 주장해왔다. 규제특례 조건에 지역균형발전을 넣지 않으면 기업들이 모두 수도권에서만 사업을 하려고 하지 않겠냐”고 반문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시장 규모가 크게 확장하고 있는 엘이디(LED) 등을 이용한 옥외광고 사업은 화려한 불빛으로 제한 조건인 환경에 걸려 신사업으로 지정되기 힘들 수 있습니다. 지역균형 발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에 특정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일정 지역을 특화지역으로 지정한 바 있는데, 지역균형 발전의 조건으로 한 기업이 수도권에 투자하려고 해도 지역에 투자하도록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서울이나 경기도에 바이오 사업 혹은 금융 사업에 도전하려고 하면 특화 지역인 강원도 원주(의료)나 부산(금융)에 투자하도록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제동을 안 걸면 인재를 찾고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나은 수도권에 집중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야당도 입장이 서로 다릅니다.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은 “우리도 집권당 시절 정부와 많이 다퉜다. 민주당이 정부와 의견이 달라 하반기에 규제샌드박스법 통과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반면 바른미래당의 한 의원은 “규제완화를 하기로 해놓고 저렇게 해놓으면 무슨 규제완화냐. 풀려면 제대로 확 풀어야 하는데 아직도 과거 야당에서 바뀐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2차 규제완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말 규제혁신회의를 취소하며 “답답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규제혁신회의에서는 그동안 추진된 규제혁신 사례를 살펴보고 하반기 규제완화 추진 내용을 살펴볼 예정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의 답답하다는 발언이 어떤 취지였는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과감한 규제완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에 불만을 보인 것 아니냐는 추측만 할 뿐입니다.
정부는 하반기 규제완화 내용으로 은산분리와 개인정보보호 규제 완화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우선 은산분리는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을 구분해 과거 재벌이 은행을 소유해 고객이 맡긴 돈을 곶감 빼먹듯 쓸 수 없도록 하고, 기업 부실이 은행에까지 영향을 미쳐 금융시스템이 마비되지 않도록 하는 보호장치입니다. 즉 산업자본이 은행 등 금융기관의 의결권 있는 지분 4%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도록 한 것입니다. 문제는 새로운 형태의 은행인 인터넷 전문은행이 생기면서 발생했습니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그것인데요. 케이뱅크는 우리은행 등 금융기관은 물론 산업자본인 케이티가 주요주주로 참여하고 있고, 카카오뱅크는 한국투자증권을 비롯해 금융기관과 카카오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케이티와 카카오는 의결권 있는 지분 4%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인터넷 전문은행의 혁신적 성장을 위해서는 IT 기술을 보유한 케이티와 카카오가 최대주주로 인터넷 전문은행 운영을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를 위해 인터넷 전문은행을 예외로 4% 지분 보유 한도를 최대주주가 될 수 있는 34% 혹은 50%까지 늘리려고 합니다. 케이티나 카카오가 해당 인터넷 전문은행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자본을 늘릴 수 있고, 늘어난 자본을 배경으로 대출도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죠. 이같은 판단은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있었고, 당시에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야당 의원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은산분리 내지 금산분리가 올해 강화됐거든요. 9%에서 4%로. 금산분리 내지 은산분리의 필요성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기본적으로 은산분리 완화해 인터넷은행을 해야 된다는 것에 대해서 저는 선뜻 수긍하기 어렵고요.”(2016년 11월21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위에서 전해철 의원 발언)
“은행법에 대한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인터넷은행만 특례법으로 가자고 하는 것은 그 신뢰가 아직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물꼬를 터주는 거라고, 이것을 찬성하시는 분들은 오해라고 하시겠지만 그런 오해를 안할 수가 없습니다.”(2017년 2월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위에서 이학영 의원)
당시 야당에서 여당으로 바뀐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그때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때문에 해당 의원들의 소속 상임위원회를 정무위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한다는 뒷말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개인정보 역시 빅데이터 이용 활성화를 위해 관련 법률을 개정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석유처럼 자원 역할이 점점 커져가는 데이터를 활용하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관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재 개인정보를 담은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해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은 있지만, 법률로는 뚜렷한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개인정보 보호 및 데이터 활성화 등을 위해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 시민단체 등이 모여 여러 차례 논의했습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데이터산업 활성화 전략’을 내놓으면서 개인정보 활용 범위를 밝혔습니다.
기존에 법적 근거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상업적으로 쓸 수 있다고 안내한 ‘비식별정보’를 없애고, 개인정보를 가명정보와 익명정보로 구분해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익명정보는 다른 정보와 합쳐도 개인을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 학술 연구는 물론 상업적으로도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문제는 가명정보입니다. 다른 정보와 결합하면 누군인지 알 수도 있는 가명정보를 공익을 위한 기록보존, 학술연구, 통계 목적으로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합의한 것인데 이에 대한 해석이 여전히 다릅니다. 정부는 학술연구나 통계 목적에 산업적 연구도 포함된다고 보는 반면, 시민단체는 기업들의 상업적 연구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한 여당의 입장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인 진선미 의원이 지난 3월 대표 발의한 ‘개인정보 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보면 정부와 입장이 다른 것으로 추정됩니다. 개정안은 비식별 정보의 사용 범위를 기존 ‘통계 작성, 학술연구 등 목적’에서 ‘통계 작성, 학술 연구 등 공익적 목적’으로 더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개정안 발의에는 홍영표 원내대표를 비롯해 이해찬·김정우·남인순·서영교·신창현·윤관석·조정식·홍의락 의원 등도 함께 했습니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나 여당 일부 의원은 상반기 규제완화 추진을 바라보며 느끼는 답답한 심정을 똑같이 토로합니다. 금융위 고위관계자는 “인터넷 전문은행이 활성화되면 기존 은행에 대한 ‘메기’ 역할은 물론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는데 여전히 일부 여당 의원들이 ‘명분’만을 고집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최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은행법의 은산분리와 관련한 산업자본에 대한 판단기준은 2002년에 도입된 것인데, 지금 시점에서 얼마나 합리적인지 따져봐야 한다. 지금의 개인정보 보호 기준은 선진국과 다르다. 또 은행권의 개인정보 유출사건 때 만들어져 과잉규제가 이뤄지면서 빅데이터산업 추진에 장애가 되는만큼 논의가 필요하다. 이런 재검토 자체를 있을 수 없는 개혁후퇴라고 본다면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도 성공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반면 한 여당 관계자는 “정부가 주 52시간 근무제나 최저임금 인상 등 수요 조절로 일자리를 창출하려고 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이제는 신산업 육성으로 일자리 창출 성과를 내려고 너무 조급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개인정보 역시 애초 정부와 전문가들이 합의한 것처럼 유럽연합(EU)의 일반개인정보보호규정(GDPR)에 맞춰 개인정보보호 위원회를 독립기구로 마련하는 등 보호도 함께 해야 하는데 규제완화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청와대 정부
여기까지가 정부의 규제완화 추진에 대한 엇갈린 의견들입니다. 20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을 최근 마무리한 국회에서 향후 규제샌드박스법은 물론 은산분리나 개인정보보호 규제 완화를 둘러싸고 한바탕 논리 싸움이 벌어질 전망입니다. 당정 간 다툼은 물론 여야 간 갈등이 예상됩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완화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저는 정부 의견이나 여야 의원 의견 모두 일부 타당한 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만큼 많은 고민거리를 남긴 것인데요. 다만 저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정부는 물론 여당 의원은 자신의 입장이 옳다는 것을 강조하며 서로를 향해 “답답하다” “한심하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사이 대화는 사라졌고, 조정도 별로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은산분리의 경우 정부는 인터넷 전문은행에 대한 규제 완화를 할 경우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구체적인 수치는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 논리가 박근혜 정부 논리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여당 의원들로부터 “관료에 포섭됐다”는 비판도 나오는 상황입니다.
정부의 규제완화에 대한 시장 반응도 차이가 있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이코노미스트는 “은산분리를 강조하지만 현재 검찰 수사를 받는 케이티가 케이뱅크의 자본을 늘릴 수 있고, 제3, 제4의 인터넷 전문은행을 하려고 하는 곳은 없다”며 “은산분리 원칙이 낡기는 했지만 그것을 푼다고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고 하는 것은 과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개인정보 규제 완화는 실제 빅데이터를 이용하려는 스타트업들로부터 요구가 많다”며 “이는 완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습니다. 반면 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는 “인터넷 전문은행이 애초 목적대로 기존 은행을 견제할 수 있는 ‘메기’가 되려면 규모를 키워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은산분리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법을 새로 제정하거나 고치는 것은 오롯히 국회 소관입니다. 정부가 좀 더 설득력 있는 논리를 들고 의원들을 설득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최근 이낙연 국무총리도 국무회의에서 “흔히 정부는 국회가 민생법안과 개혁법안을 제때 처리해주지 않는다고 아쉬워하지만, 여야 의원들은 장관들이 제대로 설명하거나 부탁하지도 않는다고 비판한다”며 “직접 만나 업무와 예산 등을 설명할 뿐 아니라 꼭 안건처리가 아니더라도 자주 만남을 가져달라“고 촉구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정부 내각 가운데 한 장관은 거의 매일같이 관련 상임위 소속 의원들을 만나 법 개정 필요성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장관들이 그렇게 움직인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책 <청와대 정부>에서 “‘가능한 길이 있다. 다만 아직 우리가 찾지 못했을 뿐이다’라는 태도야말로 정치라는 인간 활동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안 된다’는 냉소적 태도보다 ‘그럼 어떻게 문제를 개선해 갈 수 있을까에 대해 대화를 시작해보자’라는 적극적 접근이 ‘정치적 실천 이성’의 핵심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선전’을 기대합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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