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국회에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영결식이 엄수되고 있다. 연합뉴스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말 그대로였다. 27일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영결식장에 모인 이들은 대부분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한 시민은 “믿기 어려워서 이곳에 왔는데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다. 너무 아까운 분이다”라고 말했다. 23일 노 의원이 세상을 등진 지 닷새가 지났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그의 부재를 인정할 준비가 되지 않은 듯했다.
이날 오전 9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세브란스병원에서 발인 절차를 마친 장례위원들은 운구차량과 함께 영결식장이 마련된 국회 앞마당으로 향했다. 출발에 앞서 장례식장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눈 노 의원의 보좌진들은 참아온 울음을 터트렸다. 발인 직전까지 시민들의 조문은 계속됐다. 닷새 동안 시민 3만8000여명이 장례식장을 찾아 노 의원을 추모했다. 정의당은 이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절망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국민 여러분의 성원 덕분이었다. 정말로 감사하다”고 밝혔다.
‘노동자의 벗’답게, 국회에서 노 의원의 운구행렬을 가장 먼저 맞은 이들은 국회 청소노동자들이었다. 국회 환경미화노조 소속인 중년여성 19명은 운구차량이 도착하자 “어떻게 보내드리냐”며 눈물을 쏟았다. 2016년 총선 뒤 휴게공간을 빼앗긴 청소노동자들에게 흔쾌히 “정의당 사무실을 함께 쓰자. 정의당이 국회에 있는 한 여러분들이 외로워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던 노회찬 의원이었다. 김영숙 노조위원장은 “노 의원님은 우리에게 특별했다. 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손을 잡고 위로해주었다”고 돌이켰다.
영결식장으로 운구차가 들어설 때 추모객들 사이에선 한숨과 탄식이 터져나왔다. 유족과 이정미 대표, 심상정 의원 등 정의당 동료들,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강기갑 전 의원 등 진보정당의 오랜 선후배들이 운구행렬에 함께했다. 맏조카인 노선덕씨가 대신 든 영정 속에선 ‘호빵맨’ 노 의원이 환한 웃음으로 그의 오랜 동지들을 위로했다. 제단에는 그가 보물처럼 아꼈던 어머니의 손편지가 먼저 놓였다. 그의 수감 생활 당시 보내온 어머니의 편지에는 그를 염려하는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2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추모객들이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을 추모하는 액자를 묘소 앞에 두고 있다. 연합뉴스
영결식장은 국회 본청 계단 아래 앞마당에 마련됐다. 노회찬 의원이 2004년 국회의원 당선 뒤 첫 등원 때 “서민과 노동자들의 대표가 여기까지 오는 데 50년이 걸렸다”며 올랐던 계단이다. 그러나 이날 그의 동료와 지지자들은 그가 대중적 진보정치를 다짐한 바로 그 자리에서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야 했다. 10시에 시작된 영결식에서 국회장 장의위원장을 맡은 문희상 국회의장은 “제가 왜 이 자리에서 노회찬 의원님을 떠나보내는 영결사를 읽고 있는 것입니까”라고 비통함을 나타냈다.
‘평생 동지’였던 정의당 의원들도 영결식 내내 이 현실이 믿기지 않는 듯 허망하게 하늘을 바라보는가 하면, 때로 오열했다. 힘겹게 걸음을 끌며 나온 심상정 의원이 “노회찬은 가장 든든한 선배이자 버팀목이었다”고 말하자 시민들은 크게 슬픔을 토해냈고, 부인 김지선씨는 검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영결식 뒤 유족들은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510호를 찾아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가 앉았던 책상, 의자를 둘러본 부인 김씨는 노 의원의 이름이 적힌 방 팻말을 어루만지다 끝내 흐느꼈다. 건물 밖에서 운구행렬을 기다리던 시민들은 운구차량이 국회를 떠날 때 “힘내세요”, “미안해요”, “가서 편히 쉬세요”라고 외치며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마지막까지 영결식장을 지킨 한 여성(61)은 “그 짧은 시간 얼마나 고뇌했을지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서울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 절차를 마친 유족들은 이날 오후 4시께 장지인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도착했다. 하관식이 시작되자 동생 노회건씨는 유골함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렸고 부인 김씨는 두 손을 꼭 모은 채 지켜봤다. 장지에는 시민 1천여명이 모여 하관식을 지켜봤다. 노 의원 묘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노회찬의 ‘분신’과 같던 진보정당의 ‘영원한 조직실장’ 오재영 보좌관이 잠들어 있고, 위쪽에는 전태일 열사의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영달에 연연하지 않고 평생 노동자와 약자 곁에 머물고자 했던 진보 정치인 노회찬을 이제 다시 만날 수 없게 됐다. 1평 남짓한 묘역엔 새 구두 하나 변변히 사 신은 적 없는 노 의원을 위해 어느 조문객이 선물한 구두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서영지 엄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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