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마련된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묘소. 마석/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27일 많은 국민의 애도 속에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노 의원이 숨진 지난 23일 이후 닷새 동안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시민 3만8000여명이 찾았고, 26일 추모제와 27일 영결식에도 수천명이 모여 그와의 이별을 슬퍼했다. 세대와 이념을 넘어선, ‘노회찬 신드롬’이라고 할 만한 추모 열기다. 평생 노동자와 소외된 이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온 ‘노회찬의 정치’가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의 ‘이상’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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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이들을 대변하는 정치 “잘 가요 민중의 벗”, “나의 영웅, 나의 이웃”. 노 의원 빈소 앞 메모판에 적힌 시민들의 추모글에서, 노 의원은 평범한 이들의 친구고 이웃이었다.
서민을 위한다는 정치인은 많다. 하지만 진짜 서민의 자리에 있는 정치인은 드물다. 노 의원은 스스로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경기고와 고려대를 졸업한 엘리트 출신임에도 용접공이 되어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다. 쉽지 않은 진보정당 운동에 나섰고,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투명인간’들의 대변인을 자임했다. 2004년 제도적으로 차별받는 여성의 편에서 호주제 폐지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2007년 이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에 큰 역할을 했다. 2008년에는 합리적 이유 없이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을 국회의원 가운데 처음으로 발의했다. 노동자 중에서도 취약층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안을 꾸준히 냈다.
흔히 노회찬 의원의 장점이라는 ‘뛰어난 비유’는 단순한 말재주가 아니다. 주변에서는 그가 소외된 이들의 삶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민중과 밀착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민중의 언어가 몸에 배어 있다. 민중의 언어로 얘기하니 민중이 속시원하고 친근하게 느낀다”고 했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는 “정치인이 곁에 있어주고 가려운 곳을 긁어줬기 때문에, 보수·진보 이념의 벽을 뛰어넘어 공감과 연민을 얻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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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을 지는 정치 2005년 삼성에서 이른바 ‘떡값’을 받은 검사 7명의 명단을 폭로한 ‘삼성 엑스(X)파일’ 사건은 그의 정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비록 2013년 이 사건으로 의원직 상실 판결을 받았지만, 권력에 맞서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다시 그날로 돌아가도 삼성 엑스파일을 공개하겠다”고 단언했다. 자신이 받는 혜택도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내려놓았다. 마지막에 발의한 법안은 국회의원 특수활동비 폐지였다. 그가 내리는 결단과 행위 자체가 메시지였고 대중과 소통하는 힘이 됐다.
그랬던 그가 어쩌다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노 의원은 유서에서 김동원(필명 ‘드루킹’) 쪽 도아무개 변호사한테서 4000만원을 받았다고 고백하며 “법정형과 당의 징계로 부족하다”고 했다. 자신으로 인해 평생 일궈온 진보정당에 피해가 가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선택’을 놓고 노란 포스트잇은 말한다. “왜 좀 더 뻔뻔하지 못해서 이리 가십니까. 억장이 무너집니다”, “억울합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다른 정치인이라면 유야무야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말과 행동에 끝까지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27일 오전 국회에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영결식이 엄수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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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함께하는 정치 노 의원은 2009년 진보신당 대표 시절 국내에 처음 출시된 아이폰을 당직자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시대의 변화를 빨리 파악하고 따라가야 한다는 철학 때문이었다. 이관후 서강대 글로컬한국정치사상연구소 연구원은 “시대를 잘 읽고 선도하려 했고, 늘 깨어 있으려 했다. 이른바 ‘386 정치인’보다 더 젊은 세대와 소통했고 시대의 용어와 감수성으로 진보를 이야기하기 위해 늘 고민했다. ‘진보 정치인’이기보다 ‘시대와 소통하는 정치인’이라고 하는 게 더 맞다”고 말했다.
노 의원을 향한 추모 열기는 결국 서민이, 대중이 원하는 이상적 정치에 대한 열망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평생 소수정당에 몸담은 노 의원에게 정당과 이념의 범주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정희 교수는 “소수정당의 정치적 힘은 제도권 내에서는 약하다. 그런데 노 의원을 추모하는 열기를 보면 소수정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잠재돼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현상을 제일 먼저 느껴야 할 쪽은 정치권이다. 정치권은 여전히 세비나 특수활동비를 지키려는 모습 등으로 국민과 동떨어진 행태를 보인다. 정치권은 노 의원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새로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