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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노회찬 정치방식에 답 있다” 진보정당 활동가들 좌표 찾기

등록 2018-07-29 21:21수정 2018-07-30 07:52

젊은 진보정치인에게 노회찬은?
아버지·스승·인생의 좌표였던 선배
“닮고 싶었고 극복하고 싶었던 존재
정의의 길은 이긴다는 원칙 새겨줘”

노회찬 없는 진보정치 앞날은?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경각심
추모 열기의 의미 되새겨 고민할 것
더 세련되게, 소통하는 대중정당으로”
노회찬 정의당 의원 추모제가 열린 지난 26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대강당 앞에서 추모식장에 들어가지 못한 시민들이 계단에 앉아 추모식 화면을 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노회찬 정의당 의원 추모제가 열린 지난 26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대강당 앞에서 추모식장에 들어가지 못한 시민들이 계단에 앉아 추모식 화면을 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노회찬’은 언제나 거기 있었다. 1992년 본격적으로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하고 2004년 민주노동당이 국회의원을 배출하고 2018년 정의당이 지지율 10%를 오르내리며 ‘제1야당’을 넘보기까지, 그는 심상정과 함께 늘 진보정치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의 뒤에서 오는 이들에게 때론 좌표였고, 때론 비판과 극복의 대상이었다. 극복을 말하면서도 정작 그의 부재를 상상해본 이는 없었다.

29일 삼우제를 끝으로 장례는 끝났다. 노회찬이라는 등대 아래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한 정의당의 젊은 활동가, 정치인들에게 ‘정치인 노회찬’의 의미와 그가 없는 진보정치의 전망을 물었다.

■ “아버지” “스승” “좌표”였던 선배 정치인

노회찬 의원의 비서로 정치권에 발을 들인 임한솔(37) 서울 서대문구 의원은 그를 떠올리면 호되게 야단맞았던 기억이 유독 선명하다고 했다. ‘우리는 정의롭고 옳은 길을 가고 있으니 결국엔 잘되겠지’ 하던 막연한 생각들이 노 의원과 일하는 동안 철저히 깨졌다는 게 임 의원의 설명이다. 노 의원을 “나의 아이돌이자 스승”이라고 소개한 임 의원은 “그가 집요한 고민과 끈질긴 노력 없이 이룬 건 아무것도 없었다”며 “그는 진보 정치인이 갖춰야 할 모든 영역과 덕목에서 일종의 교과서와 같았다”고 말했다. 정의당 당직자 출신으로, 노 의원을 2년여간 보좌한 수행비서 하동원(27)씨도 “노 대표님은 고통스러운 순간에조차 유머감각을 발휘했고, 무슨 일이든 깊이 고민했다”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그의 설득의 기술은 우리 같은 소수정당에서 특히 소중하다”고 말했다.

가장 큰 사람이기에 늘 비판받기도 했다. 이기중(38) 서울 관악구 의원은 “원망했고, 미워했고, 벗어나고 싶었고, 극복하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고, 가까워지고 싶었고, 그런 티를 내기 싫었다. 노회찬 대표님은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고 했다. 2010년 지방선거부터 3차례의 구의원 선거에 도전할 때마다 노 의원은 그를 지원했다. 그 역시 노 의원의 선거를 늘 도왔다. 하지만 노 의원이 진보신당을 등지고 통합진보당을 향할 땐 “왜 당원들을 더 설득하고, 함께 가자고 하지 못하는지” 원망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무거운 짐을 혼자 지고도 내색 한번 안 한 사람이라서 그게 얼마나 힘든지 몰랐다”며 가슴 아파했다.

개인적 인연을 넘어 그는 모든 진보 정치인들에게 대체 불가능한 존재였다. ‘달변의 대중정치인’이라는 이미지는 정치인 노회찬의 여러 면모 중 극히 일부이고, 그는 진보정당의 노선과 철학, 정책, 전략 등 모든 걸 아우르는 정치인이었다는 것이다. 김희서(41) 서울 구로구 의원은 “그는 후배들에게 늘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권력에 굴하지 말고 약자를 지키라’는 게 선택의 기본원칙이었다”며 “앞으로 당을 끌어가는 데 있어서도 그 원칙이 우리의 제1의 방향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노회찬 없는 진보정치 어디로

슬픔 뒤에 남는 것은 현실이다. 노 의원의 길을 따랐던 ‘2세대 진보정치인’들은 이제 그가 없는 길을 스스로 찾아내야 하고, 그가 졌던 짐을 나누어 져야 한다. 장례 기간 답지한 국민적 성원과 폭증하는 당원 가입에도 불구하고, 젊은 정의당 관계자들이 당의 앞날을 놓고 긴장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정의당 당직자를 지낸 백상진(30)씨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경각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진보정치에선 그동안 ‘왜 노·심(노회찬·심상정)밖에 없냐’고 물어왔지, ‘노·심이 없으면 어쩔 거냐’는 질문을 한 적이 없다”며 “이제 그들 없이 어떻게 맨몸으로 나설지 답을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임한솔 의원 역시 “그가 정의당과 대중을 이어주는 통로이자 실질적 지도자였던 만큼 그가 없는 정의당이 겪을 어려움은 너무나 자명하다. 깊은 상실감은 물론이고 당장 우리 힘이 반토막 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대중정당이냐, 선명한 진보정당이냐’를 놓고 다시 당내 노선투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답은 결국 다시 노회찬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게 젊은 정의당 관계자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애도의 의미를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기중 의원은 “한동안은 정의당이 주목받을 거고 이 기대는 금방 실망으로 바뀔 수도 있다”며 “노회찬이 사랑받은 이유는 그가 ‘유연하면서도 원칙을 지킨 사람’, ‘친근하면서도 강직한 사람’이어서였다. 어떻게 하면 그걸 모두 충족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턱은 낮추되, 소통의 방식은 진일보한 진보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석현(31) 심상정 의원실 비서관은 “새로운 분들이 당에 들어오면서 당에도 도전이 생길 것”이라며 “두려워하기보단 노회찬이 일관되게 꿈꿨던 대중적 진보정치를 위해 더 세련되고 더 현대적인 정당을 만드는 데 앞장설 때”라고 말했다. 김희서 의원도 “좀 더 대중들과 소통함으로써 노회찬의 방식에 가까워지는 진보정당이 돼야 한다. 우리 모두 흔들리는 시기지만 거기에 답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화보] 노회찬의 진보정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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