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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서지현 “가해자야말로 ‘가해자다움’, ‘범죄자다움’을 장착해야”

등록 2019-01-29 17:34수정 2019-01-29 17:48

민주당, 서지현 검사 ‘미투 1년’ 간담회
“성범죄는 약자, 여성 대상 홀로코스트”
29일 국회에서 `서지현 검사 #미투 1년, 지금까지의 변화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 좌담회'에 참석한 서지현 검사가 발언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9일 국회에서 `서지현 검사 #미투 1년, 지금까지의 변화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 좌담회'에 참석한 서지현 검사가 발언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9일 국회에는 지난 1년 사이 ‘미투’ 운동으로 자신과 주변의 변화를 시도한 이들이 모였다. 우리 사회 미투 운동을 촉발시킨 서지현 검사와, 체육계 성폭력을 고발한 젊은빙상인연대의 권순천 부회장, 스쿨미투집회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를 기획한 양지혜씨와 지역 연극계 성폭력을 고발한 배우 송원씨가 더불어민주당 여성폭력근절특별위원회 주최 ‘서지현 검사 미투 1년, 지금까지의 변화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 간담회에 참석해 지난 1년을 돌아보고 나아갈 방향을 얘기했다.

정확히 1년 전인 2018년 1월29일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 혐의를 폭로한 서지현 검사는 준비해온 발언을 힘줘 읽어내려갔다. 아래는 발언 전문이다.

“제가 제이티비시(JTBC) 뉴스룸에 나가 인터뷰한 게 딱 1년 전 오늘이었다. 제가 겪었던 강제추행과 인사보복에 대해 가해자가 징역 2년을 선고받은 것은 많이 보도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추행이 있은지 3년 8개월, 인사 보복이 있은지 3년 5개월만에 1심 선고가 났다. 진실을 밝히는 길이 너무나 멀고도 험했고, 생명을 위협하는 고통이 있었지만 검사로서 피해자로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것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었다. 그저 검찰이 정의로워야 한다는것,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고 피해자는 제대로 보호받아야 당연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 그 대가로 검사, 변호사도 못하고 평생 집 밖으로 못나와도 후배들이 더이상 이런 일을 겪지 않을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1년간 피해자이자 공직 제보자로 살며 느낀 것은 생명 위협하는 것이었다.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이런 고통을 겪고 때론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그 고통의 원인이 무엇일까.

첫째 조직적 은폐, 둘째 2차 가해, 셋째 피해자다움에 대한 가혹한 요구, 넷째 흥미 위주로 피해사실을 소비하는 언론이다. 먼저 조직적 은폐. 검찰 역시 피해 사실을, 진실을 확인하기보다는 조직 보호 논리를 내세워 은폐에 앞장섰다.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가장 정의로워야 할 검찰도 진실 은폐에 앞장서 견딜 수 없이 힘들었다. 다음은 2차 가해. 저 역시 그런 글을 올리고 얘기하면 저를 업무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검사로 만들고 ‘정치하려는 거 아니냐’고 하는 것 등을 예상하며 올렸는데 너무나 적중하는, 그대로의 2차 가해가 이뤄졌다. 음모론부터 정치를 시작하려고 한다, 인간 관계, 업무 능력 문제 등…. 15년간 일해왔고 지금도 소속된, 정의 수호 기관인 검찰과 법무부에 의해 주도적으로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제 업무 능력과 인간 관계에 대해 아무런 부끄럼이 없다. 문제가 있다고하더라도 피해자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냐? 검찰에서 성범죄가 근절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누구도 서지현처럼 입을 열 수 없다고 한다. 2차 가해가 근절되지 않으면 성범죄 근절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셋째는 ‘피해자다움’에 대한 요구다. 이 사회는 지나치게 가해자에게 관대하고 피해자는 죽을 듯한 고통에 있는 모습을 강요한다. 피해자다움따위는 없다. 피해자는 누구보다 행복해져야 한다. 가해자야 말로 ‘가해자다움’, ‘범죄자다움’을 장착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언론에 부탁한다. 언론은 피해자를 보호하거나 근본적인 원인을 발견하고 해결책을 발견하는 것에는 관심없이, 피해자를 흥미 대상으로 소비하고 사생활 침해, 인권 침해에 앞장섰다. 2차 피해, 피해자다움 요구에 언론의 책임이 큰 것도 사실이다. 부디 언론 보도에서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 근본적인 원인에 관심을 가져달라.

최근 한 책을 봤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성인의 29% 에이즈에 걸렸다. 기대수명이 불과 61살이었던 남아공에서 2011년 치료가 필요한 모든 이에게 에이즈 치료약 보급을 결정한 뒤 7년만에 기대수명이 12년이나 증가했다. 저자는 묻는다. 이들은 에이즈때문에 죽은 것인가. 에이즈 치료약을 공공 자금으로 제공하지 못했던 공동체때문에 죽은 것인가. 성폭력 피해자들은 성폭력 피해로 고통받은 것일까. 아니면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를 비난한 공동체로 인해 입을 열지도 못한 채 죽어갔던 것일까. 성폭력 피해자들의 입을 열지 못하게 한 것은 그들의 두려움이나 나약함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진실을 들여보기 전에 꽃뱀, 창녀로 부르며 손가락질한 공동체때문이었나. 성범죄는 결코 개인 범죄가 아니라 집단범죄이고, 약자와 여성을 상대로 한 홀로코스트라고 생각한다. 미투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라는 것, 피해자 보호하라는 것. 더 이상 성범죄에 침묵하지 않는 당연한 얘기를 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정의를 말하기 위해 모든 것을 불살라라 하는 비정상은 끝내야 한다. 공포로 피해자들의 입을 틀어막은 이 잔인한 공동체와는 이제 작별해야 한다.”

29일 국회에서 `서지현 검사 #미투 1년, 지금까지의 변화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 좌담회'에서 서지현 검사가 발언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9일 국회에서 `서지현 검사 #미투 1년, 지금까지의 변화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 좌담회'에서 서지현 검사가 발언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역 극단 대표의 성폭력을 고발한 연극배우 송원씨는 “지역의 폐쇄성과 학연, 지연이 얽힌 가해자의 두터운 이해관계, 공적지원금의 독점 등”의 지역 특수성을 강조한 뒤 “여성 폭력에 대응하는 조직이 생길 수 있도록 더 큰 담론이 생길 수 있도록 많은 관심, 꾸준한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젊은빙상인연대 권순천 코치는 “체육계 성폭력 피해자들도 2차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누구 하나 앞서 얘기하지 못했고 가해자가 현장에 있으면서 피해자가 피해다니는 신세가 된 게 다반사였다”며 “2차 보복 이런 건 어느 집단이나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스쿨미투 집회를 기획한 양지혜씨는 “스쿨미투는 학교의 위계와 부당한 권력을 드러내는 고발이었다. 그러나 1년간 고발자들은 수없이 많은 2차 가해와 미온적 대응을 마주해야 했다”며 “학내 성폭력에 대한 전수조사와 성차별적 교과 과정의 전면적인 변화, 사립학교법 개정 등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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