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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단순 다수제’ 낡은 제도 버리니…의회에 ‘토론’이 돌아왔다

등록 2019-03-28 05:00수정 2019-03-28 07:27

[기획] 연동형 비례제 나라를 가다_③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가 ‘연동형 비례’ 선도
웨일스·런던 시의회도 잇단 도입
지난 19일 스코틀랜드 의회 본회의장에서는 야당 의원들과 스코틀랜드 정부 장관 사이의 ‘토론장’이란 이름의 현안 문답이 한창이었다. 리엄 커 보수당 의원이 에일린 캠벨 스코틀랜드 정부 지역사회·지방정부 장관을 단상에 불러 세웠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테러 사건과 관련해 스코틀랜드가 소수자 공동체를 환영하는 이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입니까?”

캠벨 장관이 차분하되 단호한 목소리로 답변했다. “우리는 이슬람 혐오에 맞서 단결해야 합니다. 다양성이야말로 스코틀랜드의 강점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신앙공동체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길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대한 그들의 공헌 역시 환영합니다.”

스코틀랜드 의회 본회의장에서 스코틀랜드 정부 각료와 의원들이 현안 토론을 벌이고 있다. ♣H6스코틀랜드 의회 누리집
스코틀랜드 의회 본회의장에서 스코틀랜드 정부 각료와 의원들이 현안 토론을 벌이고 있다. ♣H6스코틀랜드 의회 누리집
스코틀랜드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의회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장관은 집권당인 스코틀랜드민족당(SNP) 의원이기도 하다. 방청석에선 단체 견학 온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시민 100여명이 진지한 표정으로 토론을 지켜봤다. 스코틀랜드 의회는 이 장면들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했고, 관련 영상과 회의록 초안은 하루도 안 돼 의회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이날 현안 공방을 보러 버밍엄에서 차를 타고 왔다는 고든(75)은 “정말 멋지다. 살아 숨 쉬는 의회 민주주의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스코틀랜드 의회에서는 매주 화·수요일에 본회의 현안 토론과 상임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목요일에는 스코틀랜드 정부 수반이자 여당 대표인 니컬라 스터전 제1장관을 불러 현안 질의를 한다. 모든 과정이 일반인들에게 공개된다. 독립 왕국이던 스코틀랜드가 1707년 영국에 합병되면서 폐지됐던 스코틀랜드 의회는 292년 만인 1999년 다시 문을 연 뒤 이처럼 시민과 호흡하며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승자독식 영국과 달리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 최근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비례대표 의석을 모두 없애고 지역구 선거만 치르는 단순 다수대표제를 선거제 개편 당론으로 내놨다. 영국 의회를 모델로 한 것이다. 스코틀랜드는 영국에 소속된 지방정부이지만 승자독식의 단순 다수대표제를 시행하는 영국과 달리, 1999년 개원 때부터 전체 의석수가 129석(지역구 73석, 비례대표 56석)으로 고정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행하고 있다. ‘의석추가형 비례제’(AMS)로 불리는 스코틀랜드 선거제도는 최근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합의한 ‘50% 연동형 비례제'(의석수 300석 고정)와는 ‘총의석 고정방식’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비례성은 더 높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영국의 단순 다수대표제를 매우 문제가 많은 선거제도라고 본다. 1884년 창립된 시민단체로 100년 넘게 선거제도 개혁 운동을 영국 전역에서 펼치고 있는 ‘선거개혁협회’의 윌리 설리번 스코틀랜드 지부 대표는 “영국의 단순 다수대표제는 소수 의견을 반영할 수 없는 승자독식의 낡은 제도”라고 말했다. 앨런 렌윅 런던대 교수는 “단순 다수대표제로 인해 영국 의회는 거대 정당인 보수당과 노동당이 양분한다. 두 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은 자신들이 대표되지 못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영국 에든버러에 있는 스코틀랜드 의사당 전경. 스코틀랜드 의회는 1999년 개원하며 의석추가형 비례제를 채택했다. 김규남 기자
영국 에든버러에 있는 스코틀랜드 의사당 전경. 스코틀랜드 의회는 1999년 개원하며 의석추가형 비례제를 채택했다. 김규남 기자
‘탈 단순 다수대표제’ 선도한 스코틀랜드 의회 단순 다수대표제를 개혁하려는 움직임은 영국에서도 뚜렷하다. 스코틀랜드 의회뿐 아니라 영국의 심장부인 런던광역시 의회, 웨일스 의회도 연동형 비례제를 실시하고 있다. 북아일랜드 의회 역시 비례성을 높이는 ‘단기이양식 투표’(후보들에게 1·2·3·4등으로 순위를 매겨 투표하고 선순위자가 일정 득표수를 넘지 못하면 최저 득표자를 탈락시키고 탈락자의 표를 2순위 후보로 기재된 이에게 ‘이양’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당선자를 정하는 방식)를 시행하고 있다. 영국을 구성하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모두에서 단순다수제가 아닌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스코틀랜드민족당의 마이클 러셀 의원은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가 이런 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유권자의 의사가 정치적 의사 결정에 잘 반영되도록 비례성을 높이는 게 정치의 공정성을 높이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토머스 런드버그 글래스고대 교수는 “런던광역시와 웨일스 의회의 연동형 비례제는 스코틀랜드 의회를 모델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스코틀랜드 의회는 1999년 첫 의회 선거를 실시하기 10여년 전부터 단순 다수대표제의 문제점을 극복할 새로운 선거제도를 준비해왔다. 보수당과 스코틀랜드민족당을 제외한 노동당, 자유민주당, 지방정부, 교회, 시민단체 등이 ‘스코틀랜드 헌법협의회’(SCC)를 구성해 다양한 선거제도를 연구하고 논의했다. 당시 협의회에 코디네이터로 참여했던 에스터 로버턴은 “지난한 논의를 거쳐 헌법위원회를 구성한 뒤 ‘의석추가형 비례제’(AMS)를 권고안으로 도출했다. 전체 의석수는 기존의 단순다수제 선거구를 기준 삼아 129석으로 고정했다”고 말했다.

의석추가형 비례제는 다양성, 공정성 높여 스코틀랜드 의회의 의석추가형 비례제는 올해로 시행 21년을 맞는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학계 전문가들과 스코틀랜드 정치인들은 의석추가형 비례제가 다양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제도라고 입을 모았다. 김영미 에든버러대 교수(정치학)는 “의석추가형 비례제는 설계 자체가 기득권이 아닌 사람들에게 이득이 돌아가도록 고안된 제도”라며 “소수정당, 소수자, 정치 신인 등에게 기회를 활짝 열어주는 제도”라고 했다. 알렉산더 콜해밀턴 스코틀랜드자유민주당 의원은 “단순 다수대표제 아래서는 한 선거구에서 1만6천표 이상을 확보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자원과 광범위한 지지를 가진 정당들만 의회에서 대표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의석추가형 비례제는 5~6%의 득표율을 확보한 소수정당들도 의회에 진출해 자신들이 대표하는 국민의 이익과 의사를 대표할 수 있게 했다”고 평가했다.

유권자에게 정치적 선택의 폭을 넓혀주었다는 평가도 빠지지 않았다. 마이클 러셀 스코틀랜드민족당 의원은 “유권자들이 정치 상황에 따라 지역구 투표와 비례대표 투표에서 다양한 선택과 조합을 할 수 있다. 모든 유권자의 뜻은 사표로 버려지지 않고 ‘셈’이 되어 의회 구성에 반영된다”고 했다.

에든버러/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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