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5당 원내대표들이 15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선거제도 개혁 관련 합의문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 민주평화당 장병완 전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전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바른미래당 김관영 전 원내대표.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난해 12월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는 토요일에 이례적으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한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나경원 자유한국당·김관영 바른미래당·장병완 민주평화당·윤소하 정의당 당시 원내대표는 총 6개 조항의 합의사항에 서명했다. 이 중 2항은 ‘비례대표 확대 및 비례·지역구 의석 비율, 의원정수(10% 이내 확대 여부 등 포함해 검토), 지역구 의원 선출 방식 등에 대하여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합의에 따른다’고 돼 있다.
이때만 해도 합리적인 선거제도 개혁이 가능하다는 희망적 전망이 많았다. 의원 정수 확대는 현행 1인2표제에서 정당에 대한 민심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대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었다. 5당 원내대표가 서명할 당시 1항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 적극 검토’를 뒷받침하기 위해 ‘의원 정수 확대 여부’를 논의하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하지만 이후 이 합의는 공수표가 됐다. 한국당이 이후 ‘모르쇠’ 전략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당 지도부는 ‘10% 이내 확대 여부’ 중 ‘여부’라는 표현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논의 테이블 자체를 거부했다. “의원 정수 확대를 약속했던 게 아니다”라는 주장이었다. 반면 한국당을 제외한 야 3당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취지로 서명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국당은 2항 마지막 부분에 명시된 “정개특위 합의에 따른다”는 부분도 문제 삼았다. 정개특위 합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으니, 합의사항 전체가 ‘전면 무효’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개특위 때도 한국당은 논의 자체를 거부했고, 다른 여야 4당은 결국 의원 정수를 300석(지역구 225석+비례대표 75석)으로 고정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에 올릴 수밖에 없었다.
여당인 민주당이 ‘국민 여론’을 근거로 의원 정수 확대 논의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합의사항’ 이행에 발목을 잡았다. 10월30일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이미 당론으로 지역구 225석, 비례 75석을 연동형으로 하는 것을 확정했다”라며 “인구당 숫자를 보면 전문가 의견(의원 정수 확대)은 타당성이 있지만, 우리 국민 요구는 그게 아니다. 특권을 가진 숫자를 더 늘리지 말라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국당도 비슷한 주장이다. 국민 여론을 지렛대로 활용하면서, 지난 3월 내놓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정유섭 의원 대표 발의)의 관철을 주장하고 있다. 이 법안의 핵심은 △비례대표 의원 폐지 △의원 정수를 270석으로 축소 등이다. 선거제도 개혁의 방향을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으로, 법안 통과보다는 이를 통해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공조를 깨겠다는 속내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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