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6차 정치국 회의를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4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속보] 국정원 “북한, 김여정이 위임 통치”’ 20일 오후 한줄 속보가 떴다. 순간 세상이 떠들썩해졌다. 동료 기자는 물론이고 지인들한테서도 문의가 쇄도했다. ‘이게 뭔 일이냐’ ‘김정은이 어떻게 되기라도 했냐’…. 지난 4월 돌던 ‘김정은 사망설’ 지라시가 다시 단체 대화방에 등장하기도 했다. “위임 통치”라는 표현은 북한 최고 지도자가 친동생한테 국정 전반에 대한 ‘통치권’을 물려준 듯한 인상을 풍겼다.
‘위임 통치’ 표현은 국정원이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내용이었던 걸로 확인됐다. 국정원이 ‘만든’ 용어인 셈이다. 정보위 여야 간사단은 ‘위임 통치’란 표현을 그대로 기자들에게 전했다가 그 취지와 의미를 재차 해명했다. 설명을 들어보면 김여정은 북한에서 “사실상 2인자”이지만 통치권을 넘겨받은 것이 아니고, 국가 최고 지도자는 여전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다. 그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보고도 없다. 해프닝은 마무리됐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위임 통치는 “국제 연맹의 규약에 따른 국가 통치의 한 형식”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프랑스 등 국제 연맹의 위임을 받은 선진국이 독일과 터키의 옛 식민지를 통치”한 행위다. 신탁 통치와 비슷한 말이다.
국정원이 정보위에 보고한 북한 통치 형태 변화의 면면을 봐도 위임 통치라는 표현은 과하다. 김정은은 복수의 당 간부한테 대남·대미뿐 아니라 경제, 군사 등 각 분야에 대한 관리·감독 역할을 맡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최종 결정권은 김정은한테 있다. 책임 나누기, 일부 권한의 분산, 역할 분담 정도면 모를까 위임 통치, 통치 권한의 ‘이양’(남에게 넘겨줌)이라는 표현은 적확하지 않다.
국정원은 아마도 북한에서 김정일 시대와는 다른 통치 형태가 나타나고 있단 점을 강조하려고 위임 통치 표현을 쓴 것 같다. 그러나 정보기관은 ‘사실’에 엄정해야 한다. 해석은 정보기관 몫이 아니다. 이번 혼란은 ‘정치 9단’이라 불리던 박지원 원장 취임 뒤 첫 국회 보고에서 벌어진 일이다. 과한 ‘양념치기’로 시민을 혼란에 빠뜨리면 곤란하다.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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