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5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마쳤다. 여야 합의가 안돼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됐으나, 청와대의 임명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이번 인사 검증 과정에서 박 후보자에게 관심이 쏠린 대목은 재산신고 누락, 폭행 사건 등 도덕성 논란 외에 ‘검찰과의 관계 설정’ 문제였다. 법무부와 검찰의 역할과 위계, 검찰개혁 기조,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태도 등에서 ‘추미애 법무부’를 계승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인 셈이다. 야당은 일찌감치 ‘박범계 법무부’를 ‘추미애 시즌2 예고’로 규정하며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① 추미애처럼 검찰총장 지휘권 적극 사용할까?
추 장관은 “검찰총장은 장관 지휘·감독 받는 공무원”이라고 규정하며, 라임 사건과 윤 총장 가족 및 측근 관련 수사에서 윤 총장의 지휘·감독권을 배제했다. 박 후보자 역시 추 장관처럼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것을 시사했다.
박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국민이 검찰개혁을 원하는 이유는 검찰권의 남용이 있었고, 그 남용을 제어해야 할 검찰총장의 여러 직무상 지휘·감독권이 검찰권 남용과 함께 어우러진 측면이 없지 않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연히 제 식구 감싸기는 장관의 지휘·감독 주요 대상이 되는 것은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박 후보자는 구체적으로 특정 수사에 대해 지휘·감독권을 행사할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을 보면, 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수사에 대해 “검찰이 정치적 목적으로 과잉 수사를 하고 있단 비판도 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가 이뤄지도록 적절히 지휘·감독하겠다”고 명시했다. 윤 총장 일가 수사와 관련해서도 “장관에 임명되면 법과 원칙에 따라 신속한 수사가 이루어지도록 적절히 지휘·감독하겠다”고 답변했다.
박 후보자는 그러면서도 “장관의 지휘·감독권은 검찰권의 남용, 특히 인권 보호와 적법 절차 부분에 충실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검찰권 남용이라고 판단될 때에 한해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그는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답변 자료을 통해서도 “검찰 수사에 부당하게 관여하거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고, 검찰권이 국민 입장에서 적정하게 행사되도록 하는 규범적 통제 장치“라며 “향후 신중하게 행사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신중한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② 사법연수원 동기 윤총장과의 인연 …“추-윤처럼 살벌하진 않을 것”
추 장관과 윤 총장은 ‘추·윤 갈등’으로 불리는 대립 관계를 형성해왔지만, 박 후보자는 윤 총장과 사법연수원 23기 동기로 상대적으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2013년 11월 윤 총장이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중 징계를 받자 박 후보자는 자신을 ‘범계 아우’로 칭하며, “윤석열 형, 형을 의로운 검사로 칭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과 검찰의 현실이 너무 슬프다”라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박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윤 총장과의 친분에 대해 선을 그었다. 박 후보자는 “일반적인 의미의 동기로서의 친분이라 하면 모를까, 특별하고 개별적인 친분이 있지 않다“며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과의 관계는 단 하나의 사적인 감정이나 정서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가 박 후보자를 지명한 배경엔 추 장관과 달리 대화를 통해 윤석열 총장과의 갈등을 풀 수 있다는 이유도 있다”며 “예전처럼 장관-총장과의 관계가 살벌하게 전개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권 전면 폐지’ 주장이 나왔다. 최근 황운하 민주당 의원 등은 시민단체 ‘파란장미시민행동’이 작성한 “‘검찰 수사권의 완전 폐지’를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반드시 전면 실현하기를 원한다”는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추 장관은 수사와 기소 주체의 분리, 수사권의 다원화를 주장했지만, 검찰의 완전한 수사권 폐지를 언급한 적은 없다. 박 후보자도 검찰의 수사권 전면 폐지 주장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서면답변에서 “궁극적으로 검사의 수사권과 기소권은 분리돼야 하지만, 당장 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면 국가 범죄 대응 능력에 공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이 분리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검찰 내 분리도 있고, 별도의 청을 둬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방법도 있고 모두 검찰 구성원 설득하면서 검토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박 후보자가 검찰 인사와 관련해서는 추 장관의 형사·공판부 우대 기조를 지켜갈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조국 전 장관과 추미애 장관이 이어온 형사·공판부 검사 우대라는 대원칙을 존중하고 가다듬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추 장관이 윤 총장의 의견을 배제하고 인사를 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검찰총장이 실재하는 이상 당연히 인사하면서는 총장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사청문회가 열린 25일이 보고서 채택 시한 마지막날이었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박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보고서를 오는 27일까지 재송부해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대통령은 10일 이내의 기간을 정해 국회에 청문 경과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하고, 기간 내에 보고서가 제출되지 않으면 국회 동의 없이 후보자를 임명할 수 있다. 이르면 오는 28일 박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