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오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국제섬유박람회에서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대구/청와대사진기자단
총선 앞 텃밭 방문 왜?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구 방문은 집권 후반부까지 여당을 장악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행보다. 새누리당 내 비박근혜계(비박계)의 핵심인 유승민 의원과 그의 측근 의원들, 야당 바람(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은 안 된다는 박 대통령의 뜻을 대구 방문 자체로 보여준 셈이다. 집권 후반기 안정적인 국정운영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노동관계법 등 ‘관심법안’ 처리를 위해선, 수직적 당청 관계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는 구상이 작용한 것 같다. 특히 대구·경북(TK) 지역을 ‘친위 세력’으로 교체해 퇴임 이후의 영향력 행사까지 고려한 포석이란 해석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30분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동구), 10시30분 대구국제섬유박람회(북구), 11시20분 스포츠문화산업진흥대회(수성구) 등 한 시간 단위로 대구 지역 곳곳을 다녔다. 청와대 관행으로 보면 대통령이 굳이 참석할 만한 정도의 행사는 아니다. 대통령이 한 지역을 방문해 이곳저곳을 누비다시피 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이 지역은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대부분 도전장을 내민 이른바 ‘진박계’(진실한 박근혜계)로 분류되는 정종섭(대구 동갑)·이재만(대구 동을)·하춘수(대구 북갑) 예비후보가 현역인 류성걸·유승민·권은희 새누리당 의원에게 밀리거나 압도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 스포츠문화산업진흥대회가 열린 수성구는 김문수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에게 각종 여론조사에서 밀리는 것으로 나타난 곳이다. 박 대통령이 진박 후보 지원 및 ‘야당은 안 된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대구 현지에 밝은 한 인사는 “최소한 진박 후보인 정종섭, 하춘수, 김문수는 반드시 당선시킨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동구·북구 ‘진박-비박’ 맞붙은 곳
수성갑은 김문수-김부겸 격전지
‘진박마케팅’ 안먹히자 직접 나서
TK 현역의원들과 악수조차 안해 유승민계 내치고 친위세력 구축
집권 말·퇴임뒤까지 당 장악 노려
비판에도 현장방문 더 잦을 듯
박 대통령의 ‘대구 물갈이설’은 이미 지난해 9월7일 대구시 업무보고 당시 청와대가 현역 의원 참석을 배제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전례가 없다’며 난색을 표했으나, 청와대의 의지가 매우 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회법 개정안 파동 과정에서 ‘배신의 정치’ 주범으로 지목된 유승민 의원을 포함해 측근 의원들에 대한 강한 반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박 대통령은 같은 해 11월10일 국무회의에서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며 ‘진박’ 논란을 촉발시켰고, 뒤이어 박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정종섭·추경호(대구 달성) 예비후보들이 출마를 공식화했다. 지난 1월에는 이들을 포함해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곽상도 전 민정수석, 이재만 전 동구청장,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 등 이른바 ‘진박 연대’가 결성되기도 했다. 이어 새누리당 친박근혜계 핵심인 최경환 의원이 이들 ‘진박’ 후보 지원에 나섰으나, 지지율이 크게 오르지 않고 오히려 역풍이 우려되자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선 모양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대구·경북 현역 의원, 예비후보들이 초청된 경북도청 개청식 행사에서 국회의원들과 따로 인사하지 않고, 김관용 경북도지사 등 도청 관계자들과만 악수를 했다. 다만 맨 앞줄 귀빈좌석에 앉아 있던 정종섭 예비후보와만 활짝 웃으며 악수를 나눴다. 경북도청은 전직 행정자치부 장관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좌석을 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4·13 국회의원 총선거는 박근혜 대통령 집권 4년차에 이뤄지는 선거로 사실상 ‘중간평가’의 의미가 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새누리당의 ‘텃밭’인 대구에서조차 박 대통령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을 경우, 이는 박 대통령의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을 가속화하고 집권 후반기 정국 운영 구상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새누리당이 아무리 많은 의석을 얻어도 비박계가 주류가 되면 영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해석했다. 무엇보다 당내 비박계의 핵심축인 유승민 의원이 ‘살아 돌아올’ 경우, 남은 임기 동안 끊임없이 공격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이 보수의 메카인 대구·경북 지역을 기반으로 퇴임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특히 미래 권력 창출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라도 대구·경북을 장악하려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집권당의 당헌·당규를 무력화하고 노골적인 공천 개입 행보에 나선 데 대한 논란은 계속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공당의 정상적 공천 과정에 아랑곳없는 ‘내 사람 꽂기’ 행보에 대한 비판이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박 대통령의 ‘현장 행보’는 더욱 잦아질 전망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7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저도 기회가 될 때마다 (창조경제혁신센터) 현장을 방문해서 좋은 성과가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또 부족한 점은 없는지 살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전국 17개 시·도에 포진해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노동개혁법과 경제활성화 법안이 아직 처리가 안 됐다.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곳을 중심으로 방문을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혜정 김남일 기자 idun@hani.co.kr
수성갑은 김문수-김부겸 격전지
‘진박마케팅’ 안먹히자 직접 나서
TK 현역의원들과 악수조차 안해 유승민계 내치고 친위세력 구축
집권 말·퇴임뒤까지 당 장악 노려
비판에도 현장방문 더 잦을 듯
박근혜 대통령 10일 대구·경북 방문 동선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