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라이몬즈 베요니스 라트비아 대통령과 한 정상회담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뒤 자 리를 권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북-미 대화와 관련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13일 오전 10시로 예정된 문재인 정부 첫 화상 국무회의를 예고하면서 “평창(올림픽) 개막식 계기 정상외교 성과 및 향후 조치 관련 외교부 보고가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지난 11일 돌아간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방남 결과를 보고받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만족감을 표시하며 “화해와 대화의 좋은 분위기를 더욱 승화시켜야 한다”고 지시한 만큼, 문 대통령도 이날 관련 발언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회의 결과 어디에도 정상외교에 관한 대통령의 육성은 없었다.
국무회의 뒤 청와대에서 열린 문 대통령과 라이몬츠 베요니스 라트비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브리핑에서 “미국도 남북대화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북한과의 대화 의사를 밝혔다”는 게 문 대통령의 유일한 발언이었다. 그나마 베요니스 대통령이 북한의 ‘김여정 특사’ 파견에 의미를 부여한 데 대한 ‘수동적 답변’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지금은 말을 통해 의지를 드러낼 시점이 아니라 미국의 입장, 국내 여론 등 다양한 변수를 주시하며 신중하게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금지옥엽 같은 기회를 아주 소중하게, 혹여라도 탈이 날까봐 조심스레 한발 한발 떼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미국과 백악관의 입장”이라며 “미국도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나. 그 안에서도 서로 다른 견해가 있고 조율된 입장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우리 정부도 지켜봐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꾸준한 노력과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 파견 및 평양 초청으로 막 열리기 시작한 대화의 문이 북-미 대화로 이어지고,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선순환 국면에 들어서도록 하려면, 일단 미국이 입장을 정리하고, 우리가 미국과 북한을 설득·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한 만큼 섣불리 대통령이 나서 얘기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청와대는 남북정상회담 시점, 대북·대미 특사 파견 등에 대한 언론의 예측보도와 관련해서도 자제를 요청했다. 이 관계자는 “언론들이 굉장히 속도를 내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긍정적으로 봐주시는 것은 고마운데, (정부가) 첫발을 떼는 데에 비해 너무 속도를 내고 있는 것 같으니 한 템포만 죽여달라”고 했다.
김보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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