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사의를 표한 노영민 비서실장을 유임시켰다. ‘청와대발 다주택 파동’의 중심에 있는 노 실장을 재신임한 것을 두고, 민심을 다독이고 국정을 쇄신하려는 의지가 부족해 보인다는 쓴소리가 여권에서도 나온다. 과감한 인적 개편으로 상황을 타개하기보다, 측근들을 재등용하는 선에서 위기를 미봉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3일 노영민 실장의 유임 여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노 실장이 수석들과 함께 사의 표명을 했는데 (그를 제외하고) 인사 발표가 있었다. 인사가 일단락됐고, 노 실장은 유임됐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된다”고 말했다. 이번 교체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김외숙 인사수석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금 집을 팔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교체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지난 7일 노 실장과 5명의 수석비서관이 일괄 사의를 밝히면서 언급한 “최근 상황에 관한 종합적인 책임”에서 노 실장과 김 수석만 면제받은 모양새다. 청와대는 이날 노 실장 유임 사실을 정식으로 발표하지 않고, 기자들과의 현안 문답 과정에서 불쑥 밝혔다.
문 대통령의 노 실장 유임 결정을 두고 여권에서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지난해 12월부터 청와대를 괴롭히고 있는 ‘다주택 파동’의 뇌관을 당긴 게 노 실장이기 때문이다. 그는 내부 소통이나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다주택자 참모진에게 주택 처분을 강권했고, 자신은 강남 아파트 대신 청주 아파트를 매물로 내놨다가 ‘대통령의 최측근도 똘똘한 한 채를 지킨다’는 조롱과 냉소를 불렀다. 더불어민주당의 수도권 중진 의원은 “비서실장을 바꿨어야 국민도 변화의 의지를 느낄 텐데, 사의 표명은 쇼가 돼버렸다. 유구무언이다”라고 했다. 또다른 여당 중진 의원도 “인사에 감동이나 변화, 혁신 의지가 느껴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다.
야당은 “고구마 먹은 듯 갑갑하다”고 비꼬았다. 배준영 미래통합당 대변인은 “청와대 경제팀, 내각 경제팀도 고집스레 유임시킬 듯하다. 아무 설명 없는 오늘 유임 결정은 ‘고구마’ 먹은 듯 갑갑한 인사다”라고 논평했다.
청와대 참모진 중에선 노 실장의 처신을 두고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을 토로하는 이도 있었다. 한 관계자는 “장마철 날씨처럼 무겁고 답답하다. 노 실장의 유임으로 지난번 사의 표명은 진정성이 없었다는 게 드러난 것 아니냐”고 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노 실장이 진정성 있게 사임을 관철했어야 한다. 책임이 큰 노 실장이 정작 자리를 지키게 되면서 지난번 수석 교체는 의미가 퇴색해버렸다. 쇄신도 안 되고, 분위기 전환도 어려워졌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번 인사는 청와대 인재 풀이 너무 좁다는 한계도 드러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노 실장의 후임자를 찾지 않은 것은 아닌데 대안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국가 정책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초래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노 실장을 대체할 인사를 찾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청와대의 인사 시스템이 좁고 치밀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성연철 김원철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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