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해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7월 말께였다. 당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문제가 가장 어려웠다. 그래도 무난하게 진행되는 것 같아 다행이다”라고 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하루 10~40명 정도로 안정세를 보일 때였다. 공공의료를 강화하자는 공감대도 퍼져 있었다.
그러나 보름여 뒤, 광화문 집회가 열렸고, 상황은 급변했다. 감염된 사람이 150명을 훌쩍 넘기더니 200, 300, 400명대로 가파르게 치솟았다. 모두가 우려했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 2차 유행이었다.
잠잠하던 일부 의사들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진 것은 이즈음이었다. 전공의·전임의 등을 축으로 공공의료 확대 정책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연일 확진자 수가 최고치를 깨고, 응급환자가 이 병원 저 병원을 돌다 숨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외려 병원 복도 한쪽에 이들이 벗어 켜켜이 쌓아둔 가운 높이는 더 올라갔다. 확진자 수가 늘어날수록 ‘전교 1등’들의 벼랑 끝 전술은 위력이 더해지는 것 같았다. 모든 정책을 없던 것으로 하고 코로나가 끝난 뒤에나 처음부터 논의하자고 했다. “져본 적이 없는 녀석들은 정말로 남의 마음을 모르는군”이란 어느 영화 대사처럼 냉혹하고 이기적이었다.
그런데 청와대와 정부는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다. 슬그머니 의사 국가시험을 연기하더니, 결국 가운을 벗은 의사들의 요구를 거의 다 들어줬다. 코로나19가 안정된 뒤에 의-정 협의체를 꾸려 의대 증원이나 공공의대 신설 문제 등을 협의하기로 한 것이다. 나라 안에서 여전히 하루 100명 넘는 확진자가 나오고, 세계적으로도 누적 확진자 수가 3천만명을 넘은 현실에서 ‘코로나19가 안정된 뒤’라는 협상 재개 시점은 사실상 ‘무기한’에 가깝다. 일부 의사는 “코로나19 종식 뒤”라고까지 했다. 청와대는 “공공의료 확대라는 기조와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항변했으나, 임기 안에 실현이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60% 가까운 국민이 집단 진료거부에 따가운 눈총을 보냈음에도 정부는 물러섰다. 코로나19가 통제 불능의 고빗사위에 있었고, 세계에서 인정받은 케이(K)방역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는 점을 헤아리더라도 허망한 양보였다.
지난여름을 흔든 의사들의 집단 진료거부는 문재인 정부가 후반기로 향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 보여줬다. 힘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은 유치원 사태와 견주면 금방 알 수 있다. 쟁점은 그때도 공공성 강화였다. 청와대와 정부는 사립유치원의 불투명한 운영을 막고 재정 투명성을 높이려 유치원 3법 개정을 추진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보수 야당과 언론의 지원 속에 결사반대했다. 집단 폐업과 개학 연기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청와대와 정부는 일관된 메시지를 냈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검찰 수사 등으로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흔들림이 없었다. 결국 한유총은 조건 없이 투쟁을 접었다. 정부가 개혁의 당위와 필요성을 인정하는 여론을 지렛대 삼아 뚝심있게 추진한 결과였다.
청와대의 국정 장악력은 마치 모래시계처럼 남은 임기에 비례해 약해질 것이다. 보수 언론이 대통령의 간호사 격려 발언을 기상천외한 ‘의사-간호사 갈라치기’ 술수로 둔갑시키는 것처럼, 작은 틈이라도 보이면 물어뜯길 위험도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조금이라도 언행일치가 되지 않으면 호되게 되치기당할 가능성도 갈수록 커질 것이다.
7조8천억원 규모의 4차 추가경정예산이 통신비 탓에 진통을 겪는다. 애초 어려운 계층을 두텁게 지원하는 맞춤형 선별지원을 원칙으로 내세웠지만, 당·청이 13살 이상 국민 통신비 2만원 지원이라는 ‘어정쩡한 예외’를 끼워 넣으면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 탓에 자유로운 대면접촉과 경제활동이 어려운 국민 모두를 위한 정부의 작은 위로이자 정성”이라고 했지만, 많은 이들을 납득시킬 수는 없었다. 청와대와 정부의 메시지가 일관성을 잃자 원칙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작은 틈은 추석 전 코로나 지원금 지급이라는 최우선 목표도 불투명하게 한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지지는 것과 같다”는 옛말이 전한다. 원칙과 방향성을 잃지 말고 조심조심 일관성을 유지하라는 말로 들린다. 가뜩이나 외풍에 흔들리기 쉬운 집권 후반기다. 일관성과 중심에 관해 더 생각해볼 일이다. 예외를 두면 일에 힘을 싣기가 어렵다.
성연철 정치부 기자 sych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