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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사이버 요원 ‘워킹맘 코스프레’에 7만여명이 속았다

등록 2013-11-20 19:55수정 2013-11-21 23:05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파워 트위터리안으로 영향력 커
정부정책 홍보 등 대선국면 활약
군 중립성 말하며 완벽한 위장도

사이버 동료인 밀리로거·광무제와
SNS에서 글 주고받으며 업무 수행
덜미잡힌 뒤 인터넷서 얼굴 공개돼
“언론에 보도되면 사실 여부 따지지 않고 마치 그것만이 사실인 것처럼 믿게 되는 현실이 짜증나는 아침. 전후사정 따지고 앞뒤 이야기 들어보면 달라지는 게 사람 마음인 것을….”

팔로어가 7만7000여명에 이르는 국군 사이버사령부(사이버사) 소속 이아무개 중사의 마지막 트위터 글이다. <한겨레>가 군 사이버사 요원들의 댓글·트위터 대선개입 의혹을 보도한 지 열흘 만인 지난 10월24일이었다. 이틀 전인 10월22일, “혹시 님에 직업이 사이버사령부 요원인가요?”(roughness)라는 반응에 대한 답글 성격이었는데, <한겨레>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는 항변이었다.

이 중사가 군 사이버사 소속 요원임을 부인하는 듯한 이 글을 올리자 즉각 날 선 글들이 올라왔다. “그래서 사이버사령부라는 거야 아닌 거야?” “나도 그게 궁금, 전후사정을 알고 싶습니다” 등의 내용이었다. ‘파워 트위터리안’인 그에게 이런 수모는 처음이었다. 두 아이를 둔 엄마인 이 중사는 그때까지 트위터 공간에서 ‘칼퇴근’ ‘오늘은 지각’ 등과 함께 ‘센스쟁이 사장님’이라거나 ‘사무실 언니’ 등의 아이디로 평범한 직장인 코스프레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자신의 신분을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고 열심히 일하는 워킹맘”이라고 소개했다. 출근길의 고단함을 전달하거나 유머, 취미 등의 글을 쓰거나 리트위트하기도 했다. 동시에 북한, 독도, 제주해군기지, 일본 등의 주제를 다루며 정부와 여당의 정책을 홍보하고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나 박근혜 후보 등을 지지하는 내용의 글을 꾸준히 올렸다. 야당을 깎아내리는 글이 주목받으면서 사이버 논객으로도 주목받았다. 지난해 대선 국면에선 그의 말 한마디가 보수 인터넷 매체에서 에스엔에스(SNS) 동향으로 언급될 만큼 눈길을 모았다. 언뜻 보기엔 심리전을 펼치는 계정으로 도드라지지 않았다. 국정원 직원들이 트위터나 게시판에 올리는 방식과 비슷했다.

그는 “군인들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게 되어 있기 때문에 대선에 개입해선 안 되죠”라는 글을 스스로 올리기도 했다. 대선을 한달 앞두고 군 인권센터에 ‘군 부정선거 신고센터’가 개설된 날이었다. 이 글이 그동안 열성적으로 수행해온 ‘작전’을 감추려는 글이었다면 그는 분명 ‘위장의 달인’이었다. 방문자의 시선으로 보면 이 중사의 글은 객관성을 잃지 않고 있다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 중사가 올린 제주해군기지 지지글 등 국방정책을 포함한 정부정책 옹호나 김관진 국방부 장관, 김병관 장관 후보자 응원 글에는 많은 지지글이 달렸다. 파워 트위터리안답게 그는 야당을 비방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온건한 편이었다. 물론, 임수경 민주당 의원을 향해서는 “니가 이러고도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냐? 저런 사람은 당장 국회의원직에서 사퇴시켜야 한다”고 하는 등 야당 의원 비난에 열을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 중사는 군 사이버사가 창설되기 이전부터 심리전 전문가로 활약했다. 사이버사 이전 그가 소속한 부대가 어디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를 반대하는 글을 올린 것이나 2009년 당시 이상희 국방부 장관을 옹호하는 글을 쓴 흔적으로 볼 때 사이버사령부 요원으로 활약하기 이전에도 심리전 부문에서 활발히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방식은 사이버심리전 요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네이버 블로그, 티스토리 블로그 등 복수의 계정을 동시에 활용해 군대, 사회 이슈 등을 생성하고, 자신의 계정으로 여기저기에 퍼나르는 방식이다. 2011년 들어서는 사이버 동료이자 상급자인 ‘밀리로거’(@zlrun777), ‘광무제’(@coogi1113) 등과 함께 에스엔에스에서 글을 주고받는 방법으로 사이버상에서 △군통수권자 보필 △국방정책 및 정부정책 홍보·비방도 완화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특히 이 중사는 지난해 8월30일 새벽 3시7분과 19분에 이명박 대통령의 치적을 홍보하는 ‘오빤 MB스타일’ 동영상을 올렸다. 국정원 직원이 윗선의 지시로 퍼뜨렸다는 바로 그 동영상이다. 이튿날 저녁 7시48분, 3만여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사이버사 요원 ㅈ씨가 ‘밀리로거’(@zlrun777)라는 이름으로 이 동영상을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다. 그가 올린 이 동영상은 같은 시각 국내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미투데이’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40여분 뒤 또다른 사이버사 요원 ㄱ씨가 ‘광무제’(@coogi1113)라는 이름의 본인 트위터에 같은 동영상을 올렸다.

그가 이런 글과 동영상을 올린 공간이 사이버사 사무실인지 집이나 카페 등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현역 군인 신분으로 정치 개입 성격의 글을 올리는 것 자체가 현행법 위반이라는 점이다. 정치분야 파워 블로거로 꼽히는 ‘아이엠피터’는 지난 1일 자신의 블로그에 “‘31살 육군 중사’ ‘아줌마, 워킹맘으로 단순히 군인을 좋아한다’고 주장했던 이 중사는 국가기관이 사이버 공간에서 어떻게 정치에 교묘하게 개입했는지를 보여주는 산증인과 같은 인물”이라고 비판하며 이씨의 얼굴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중사는 피의자 신분으로 국방부 조사본부 조사를 받았다. 여전히 사이버사 소속으로 일하고 있지만 그가 열심히 활동했던 트위터, 블로그 계정은 아직 휴면상태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관련영상] [한겨레 캐스트#198] 국정원·군이 공모한 ‘댓글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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