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송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21일 오후 강원도 강릉역에 도착해 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한 여성 시민이 “이뻐요”라고 하자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현 단장 일행은 황영조기념체육관, 강릉아트센터 등 평창겨울올림픽 기간에 공연할 시설을 점검했다. 강릉/연합뉴스
2년 만에 온 북쪽 손님에 대한 언론과 시민의 관심은 뜨거웠다. 내외신 취재진 수백명이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등 북쪽 대표단 7명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했다.
현 단장 등 북쪽 대표단은 21일 오전 8시57분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이어 9시2분께 경기도 파주 도라산역에 있는 통일부 남북출입사무소를 통과해 곧장 서울역에서 케이티엑스(KTX)를 타고 강릉으로 이동해 공연 시설을 점검했다. 현 단장은 이날 오후 몰려드는 시민들의 관심 속에 강릉아트센터를 둘러본 뒤 “강릉 사람들이 따뜻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고 최성일 강릉시 올림픽지원단장이 전했다.
앞서 이날 아침 현 단장이 통과한 파주 남북출입사무소는 개성공단이 활발하게 돌아가던 시절만 해도 공단에서 완성된 제품을 받아 가려는 차량들로 사무소 주차장이 붐볐지만, 개성공단이 폐쇄된 2016년 2월 이후 오가는 이의 발길이 끊겼다. 2년 만에 서해 육로가 열린 것이다. 현 단장 일행의 차량이 군사분계선을 통과해 남북출입사무소까지 이동하는 동안 우리 군은 경비차량으로 에스코트하는 통행보장조치를 가동했다.
“안녕하십니까.” 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해 북쪽 차량에서 내린 현 단장은 남쪽 정부 관계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현 단장은 짙은 남색 롱코트에 모피로 보이는 털목도리를 둘렀다. 치마 정장에 앵클부츠, 핸드백까지 세련된 차림새였다. 그는 이날 일정 내내 미소를 띤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현 단장은 지난해 10월 북한 노동당 제7기 2차 전원회의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이름을 올릴 만큼 북한 내부에서 정치적 위상이 높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성악가수 출신인 그는 김정일 시대 대표적 예술단인 ‘보천보 전자악단’에서 활동했고,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뒤에는 모란봉악단 단장을 맡았다. 남쪽에 파견되는 북쪽 대표단을 여성이 이끄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2013년 6월 김성혜 당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이 남북 장관급 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에 북쪽 수석대표로 나온 뒤 이번이 두번째다. 현 단장 일행에는 김순호 삼지연관현악단 행정부단장과 안정호 예술단 무대감독 등이 포함됐다.
현 단장 등 북쪽 대표단은 예술단 140여명의 공연 장소, 무대 조건, 설비 및 기자재 설치 등 실무적 문제를 살피기 위해 왔다. 삼지연관현악단은 평창 올림픽 개막 즈음에 서울과 강릉에서 1차례씩 모두 2차례 공연할 예정이다.
현 단장 일행은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우리 정부가 준비한 대형 버스를 타고 오전 10시26분께 서울역에 도착해, 곧바로 강릉행 케이티엑스에 올랐다. 이들이 가는 곳마다 수백명의 인파가 몰렸다. 담담한 표정으로 미소를 잃지 않던 현 단장은 취재 열기에 놀란 듯 잠시 굳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낮 12시46분께 강릉역에 도착한 현 단장에게 취재진이 “일정이 (하루) 늦어진 이유가 있는지” 등을 물었지만 미소만 머금은 채 별다른 답은 하지 않았다. 현 단장 일행은 강릉의 씨마크호텔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메뉴는 자연송이를 곁들인 갈비찜과 대관령 감자전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찬 뒤에는 황영조기념체육관과 강릉아트센터 등 공연장 후보지를 둘러봤다. 현 단장에게 강릉아트센터 시설을 안내한 최성일 강릉시 올림픽지원단장은 “현 단장 일행과 처음에는 서먹하고 냉랭했지만 아트센터를 둘러보며 여담을 나누는 등 이내 화기애애해졌다”고 전했다.
강릉 시민들은 현 단장 일행의 방문과 평화 올림픽에 대한 기대로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대표단이 강릉역에 도착하자 수백명의 시민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고, 스마트폰 등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한 시민이 “예뻐요” 하고 외치자 현 단장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강릉시민 이정원(58)씨는 “강릉 방문을 환영하며, 평창 올림픽이 남북 관계 개선에 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 단장 일행의 방남 첫날 일정은 저녁 6시를 넘겨 마무리됐다. 현 단장 일행은 숙소인 강릉의 스카이베이 경포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이들은 22일 서울로 이동해 공연장 후보지 2~3곳을 더 둘러본 뒤 경의선 육로를 통해 북한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한편, 23일에는 금강산 남북합동 문화행사와 마식령 스키장 남북 스키선수 공동훈련 진행을 위한 남쪽 선발대 12명이 2박3일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한다. 25~27일에는 북쪽 선수단, 응원단, 기자단의 평창 올림픽 참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윤용복 체육성 부국장 등 북쪽 대표단 8명이 방남할 예정이다.
공동취재단, 노지원 박수혁 김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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