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를 방문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고 신영복 선생의 ‘通’(통)이란 글자의 서화와 이철수 판화가의 한반도 판화 작품을 배경으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급진전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역동적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문재인 대통령 방북 초청에 따라 제3차 남북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북핵 문제를 둘러싼 주변 각국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가장 강력한 카드를 꺼내 든 것은 현재 한반도 정세를 그만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반증한다. 지난해 격화했던 북-미 간 ‘말의 전쟁’과 군사적 긴장 상태가 올해도 지속된다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압박 속에 북으로서도 견디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남북관계를 전면적으로 풀어내는 가장 빠른 방법인 정상회담을 선택한 것은 북도 제재·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일정한 형태의 ‘변화’를 받아들이겠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 성사 여부는 북-미 관계가 결정적인 변수다. 지금처럼 북-미가 극한 대립을 하고 있는 상황에선, 남북관계 진전도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앞선 두차례 남북 정상회담도 한반도에서 남·북·미 3자 구도에서 파생된 3개의 양자관계(남북, 한-미, 북-미)가 선순환할 때 성사됐다”고 지적했다. 안정적인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남쪽이 북-미 대화를 중재할 수 있는 상황이라야 정상회담을 통해 정세를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2000년 6월15일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은 1999년 5월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 중심이 된 ‘페리 프로세스’가 진행 중이었기에 가능했다. 2007년 10월4일 제2차 정상회담도 같은 해 2월 열린 6자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담은 2·13 합의가 나오면서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일단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과 북쪽 고위급대표단의 접견이 하루 지난 10일(현지시각) 백악관 쪽은 “일치된 대응을 위해 한국과 긴밀히 접촉 중”이라고만 밝혔다. 국무부 쪽은 “(입장을 내기 위해) 작업 중”이란 반응이 전부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도 고민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만 10일 백악관 풀기사를 보면,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북한의 초청을 수용한다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한국 방문이나 지난 1주일 동안 보낸 대북 메시지를 손상시키는 것으로 보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니다.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북관계 진전이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미국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핵심 변수는 문 대통령이 북쪽 대표단을 만났을 때 언급한 ‘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방북이나 제3국에서 북-미 고위급 회담이 이뤄진다면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쉬워진다. 북쪽이 ‘핵·미사일 시험 일시 중지’나 ‘틸러슨 장관 방북 수용’ 정도의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다면, 국무부 등을 중심으로 한 트럼프 행정부 내부 ‘대북 협상파’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생길 수 있다.
일본 쪽은 남북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을 잔뜩 경계하는 분위기다.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은 10일 “과거 일본도 한국도 북한의 화해정책에 응해서, 결과적으로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계속했다”며 “한국 정부가 확실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일본은 향후 미국과 연계해 남북대화 분위기를 견제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반면 중국 쪽에선 한반도 정세에 긍정적인 신호라며 환영하고 나섰다. 관영 <신화통신>은 11일 논평에서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현 상황을 비꼬거나 압박 수위를 높이라고 부추기고 있으며, 군사훈련을 재개할 궁리를 하고 있다”며 “한반도에서 대화와 담판의 대문이 열릴 수 있는지는 남북 양쪽이 지속해서 선의로 대할 수 있는지와 각국의 지지와 협조, 대화 촉진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9일(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북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중국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11일 밝혔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쪽은 그간 비핵화 논의는 북-미 사이의 문제라고 주장해왔지만, 지금 상황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북핵 문제를 의제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다”며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내놓아야 우리 정부가 대미 설득과 북-미 대화 중재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북쪽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인환 기자, 워싱턴 도쿄 베이징/이용인 조기원 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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