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5일 강원 평창겨울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폐막식에서 외빈들과 함께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문 대통령, 김 여사, 이방카 트럼프 미국 백악관 보좌관, 류옌둥 중국 부총리, 정세균 국회의장,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 통역관, 김명수 대법원장. 이방카 보좌관과 김 위원장은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평창/사진공동취재단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25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북-미 대화에 나설 뜻이 있다고 밝힌 것은 북·미가 지금처럼 최악의 대결 구도에 머물러 있는 한 남북관계의 질적인 도약도 어렵다는 현실 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북·미가 대화에 나선다면 북 핵·미사일 문제가 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 비춰,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북이 핵·미사일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밝힌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날 면담에서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전면 복원에 시동을 건 남북관계를 확대·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에선 남과 북 사이에 이견이 없었다. 문 대통령이 “북한이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에 이어 폐막식에도 대표단을 보내 축하해줘 올림픽이 안전하게 치러진 데 대해 높이 평가한다. 특히 남북이 단일팀을 구성하고 공동입장을 해서 전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줬다”며 남북관계가 앞으로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진전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자, 북쪽 대표단은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같은 의지를 지니고 있다”고 김 위원장의 뜻을 전달하며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도 조속한 북-미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간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등 한반도 문제의 본질적 해결을 위해선 남북 대화와 함께 북-미 대화가 ‘선순환’해야 한다고 여러차례 강조해왔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로 파견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방북 초청에 대해 “여건을 조성해 성사시키자”고 화답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날 면담에서 북 대표단이 북-미 대화에 나설 뜻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은 의미있는 변화다. 그간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지속되는 한 북-미 대화는 없다거나, ‘대화를 구걸하지 않겠다’는 등의 주장을 앞세우며 북-미 대화를 거부해왔다. 특히 북쪽 대표단은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가 같이 발전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생각이 같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북-미 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에 북이 화답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런 메시지에 대해 북-미 간 초보적인 수준에서 탐색적 대화가 이뤄질 수 있는 ‘청신호’가 켜졌다는 분석을 내놨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일단 북-미 간 탐색적 대화는 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북-미 관계에 정통한 외교소식통도 “김영철 부위원장이 그렇게 말했으면 좋은 사인(신호)으로 보인다. 북쪽이 나름대로 성의를 나타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북쪽의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가 가능하다는 의사를 밝히면서도 먼저 손을 내밀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이 소식통은 “사실 북한이 대화를 하고 싶으면 뉴욕 채널을 통해서 말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북-미 간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정부 안팎에선 미국이 김 부위원장 등이 남은 방한 기간 동안 내놓을 발언에 주목하며, 이후 뉴욕 채널 등을 통해서 협의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청와대는 이날 면담이 평창 현지에서 오후 5시부터 1시간 동안 이뤄졌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장소는 공개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김 부위원장을 비롯한 북쪽 대표단 8명 전원과 접견을 한 뒤, 김 부위원장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과 따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남쪽에선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만 배석했으며, 면담 장면을 담은 사진 등도 공개되지 않았다. 김 부위원장 방남에 대한 보수 진영의 반발을 의식한 조심스러운 행보로 보인다.
정인환 성연철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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