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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비핵화 방법론’ 북에 제시…남북 “주변 4국과 협력” 뜻 모았다

등록 2018-02-26 22:55수정 2018-02-27 00:25

김영철 방남 이틀째 ‘분주한 남북’

문 대통령, 전날 김 부위원장에
‘핵 동결-폐기’ 해법 설명한 듯
북-미 중재자로 적극적 움직임

정의용 실장 “대화 분위기 조성
미·중·일·러 설득에 최선 다해”
북한에 전향적 태도 변화 설득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오른쪽)이 26일 오후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만난 뒤 호텔을 나서고 있다. 정 실장은 김 부위원장과 오찬을 함께하며 북-미 대화와 남북관계 발전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오른쪽)이 26일 오후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만난 뒤 호텔을 나서고 있다. 정 실장은 김 부위원장과 오찬을 함께하며 북-미 대화와 남북관계 발전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방남 이틀째인 26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은 숙소인 서울의 한 호텔에서 두문불출하며, 남쪽 외교·안보라인 핵심 인사들을 두루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방남한 북한 고위급 인사가 공개 일정 없이 비공개 협의를 이어가는 자체가 이례적인데, 남북이 최근 한반도 주변 4국의 움직임을 비롯한 정세를 공유하고, 북-미 대화를 위한 서로의 구상과 해법을 밀도있게 논의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 부위원장의 이날 일정 가운데 유일하게 공개된 것은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과의 오찬 회동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오후 늦게 기자들과 만나 “양쪽은 한반도 주변 정세, 특히 미·중·일·러 4국과의 관계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며 “이들 4국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데 대해서 (남북이)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남쪽은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과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미·중·일·러 4국 설득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만큼 북한도 북-미 대화를 위해 좀더 전향적으로 나서줄 것을 집중 주문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정의용 실장이 김영철 부위원장에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주변국과 관계 회복 노력, 특히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차례 이상 공식 정상회담을 하고 한달에 한번 직접 통화하면서 신뢰를 구축했고 대화 분위기를 조성해 놓았다는 점을 주로 설명했다”고 밝혔다. 이에 김 부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노력을 평가하면서 “미국과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 우리는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여러차례 있다고 밝혔다”고 답했다고 한다.

정 실장과 김 부위원장의 오찬 회동은 북-미의 중재자로서 양쪽 사이를 오가며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더해 북-미 간 간극을 좁히는 역할을 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구상을 구체화하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앞서 문 대통령은 25일 김 부위원장 등과의 평창 회동에서는 북쪽의 비핵화 필요성을 강하게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김 부위원장에게) 북한이 비핵화해야 한다는 것뿐 아니라 비핵화를 위해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하는지 방법론까지 말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이 북핵 해법으로 ‘핵 동결-폐기’를 주장해온 만큼 이날 김 부위원장에게 설명한 ‘방법론’은 2단계 구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낮 12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오찬에는 남쪽에서 정 실장과 남관표 청와대 안보실 2차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과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북쪽에서는 김 부위원장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오찬에 이도훈 본부장이 참석한 점은 눈길을 끈다. 지금껏 북한은 핵을 ‘북-미 간 문제’라며 남쪽과는 협의하기를 거부해왔다. 따라서 남북대화의 장에 외교부 인사가 등장하는 사례도 거의 없었다. 남북대화 과정에서 북쪽이 국제관계를 다루는 외무성을 배제해왔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25일 방남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수행원으로 대미외교를 담당하는 최강일 외무성 부국장이 포함된 점도 이례적이다.

이날 이 본부장 쪽과 최 부국장 쪽이 별도의 협의 채널을 구축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이 본부장 또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 외교부 고위급 인사가 북한 대표단의 방남 결과를 가지고 조만간 방미할 계획으로 알려져 ‘중간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 국면에서 외교부와 외무성이 협의 채널을 열었다면 이는 북-미 대화로 가기 위해 남북이 함께 밑그림을 그리는 모양새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남북 역시 ‘탐색적 논의’ 단계라는 것이 정부 안팎의 분석이다. 한 정부 소식통은 남북이 마주 앉았으나 “아직도 살얼음판”이라며 “신경전 단계”라고 전했다. 다른 남북관계 전문가는 “김영철 부위원장이 온 것은 북한이 남북관계뿐 아니라 북-미 대화를 염두에 둔 것”이라며 “김 부위원장은 구체적인 것들을 탐색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계기에 북한 대표단은 미국과 한국 쪽 진의를 파악하고, 남쪽은 북한의 비핵화 협의 가능성을 타진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김지은 김보협 노지원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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