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의제 조율을 위해 27일부터 판문점 북쪽지역인 통일각에서 실무협상에 나선 성 김(왼쪽) 주필리핀 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그래픽 정희영 디자이너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 새벽 5시30분을 조금 넘긴 시각부터 내신, 외신 기자들이 속속 모여들었습니다. 아침 7시께에는 이미 취재진 20여명이 호텔을 둘러싸고 진을 쳤습니다.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가 호텔을 나서 판문점 통일각으로 출발하는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방송사에서 나온 기자들은 차량이 오가는 주차장 입구를 향해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취재기자의 눈, 사진기자의 카메라 렌즈도 모두 한 곳을 향했습니다. 기자들의 ‘뻗치기’(취재 대상을 무작정 기다리는 전통적인 취재 기법을 뜻하는 언론계의 은어)가 시작됐습니다.
30일 오전 8시3분께 성김 주필리핀 미국대사 등 미국 협상단을 태운 외교 차량이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을 빠져나가고 있다. 노지원 기자
‘성 김’이 누구냐고요? 김 대사는 주한 미국대사를 지냈고,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역임한 미국의 대표적인 대북 협상 및 한반도 전문가입니다. 그는 이번 북-미 정상회담 준비 실무단 대표로 합류했고, 곧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 관련 중책을 맡아 북한과의 협상 전면에 나설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모두들 궁금해하는 북-미 간 비핵화, 체제안전보장 관련 협상의 실무를 맡는 인물이라 세간의 관심이 그에게 쏠렸습니다.
성 김 대사와 함께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한반도 보좌관과 랜달 슈라이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도 북한과의 실무 협상을 위해 일단 서울에 왔습니다. 이들은 27일부터 판문점 북쪽 통일각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등과 함께 회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6·12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 협상에 나선 것인데요. 북한의 비핵화, 체제안전보장 등 북-미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보좌관을 태운 차량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호텔 주차장 앞에서 기다린 지 90여분이 지난 7시6분, 주한 미국대사관의 외교 차량 한 대가 호텔 주차장으로 들어갔습니다. 10분 정도 흐르자, 차량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팟! 팟! 팟!’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습니다. “‘성 김’ 맞아?” 기자들이 웅성거렸습니다. 차량 유리에 썬팅이 돼 있고, 차가 빠른 속도로 휙 이동해버리기 때문에 안에 누가 탔는지 가려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찍은 사진과 영상을 확대하고 또 확대하면서 누가 차를 타고 나간 것인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차에는 김 대사가 없었습니다. 대신 차에는 후커 보좌관이 있었습니다. 미국 대표단은 28일까지만 해도 호텔 1층 현관에서 차에 타고, 잠시 로비에 앉아 쉬기도 했지만, 취재진이 몰려들자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지하주차장에서 차에 타고 내렸습니다.
‘성 김 대사나 슈라이버 차관보 등 나머지 실무협상 대표단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판문점 통일각에 회담을 하러 가야할텐데, 언제쯤 나오는 걸까?’ 생각하며 주차장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그때였습니다. 이날 7시50분, 미국 외교 차량 두 대가 주차장으로 들어섰습니다. 후커 보좌관이 타고 나간 외교 차량도 다시 돌아왔습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6·12 북미정상회담 의제조율을 위한 실무회담 미국 측 대표단의 성김 주필리핀 미국대사가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그로부터 정확히 13분 뒤 대표단 전원이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일단 김 대사와 후커 보좌관을 태운 세단 차량이 가장 먼저 나왔고, 슈라이버 미 국방부 아태 담당 차관보가 탄 차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같은 차에 통역 담당자도 보였습니다. 아마도 대표단은 북쪽과의 원활한 회담을 위해 통역사를 대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랜달 슈라이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취재진이 목격한 김 대사는 29일 평상복을 입었던 것과 달리 이날은 양복을 갖춰 입었습니다. 미국 대표단 일행 가운데는 ‘나비 넥타이’를 맨 사람도 있었습니다. 격식을 갖춰 회담에 임하려는 것일까요? 많은 기자들은 대표단이 이동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고, 일부 방송 기자들은 “‘성 김’을 태운 대사관 차가 지금 판문점으로 출발했다”며 현장중계를 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이들이 탄 차들은 판문점에 진입하기 위한 입구 격인 통일대교에서 취재진에게 목격됐습니다. 오늘 북-미 실무 협상의 결과는 어떨까요. 실무 협상이 잘 된다면 6월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도 무탈하게 열릴 것이고, 그 결과도 좋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이 판문점 실무협상으로 쏠리는 이유입니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북미정상회담 의제 논의를 위해 북한과 실무회담을 하는 미국측 협상팀 차량이 3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를 건너 판문점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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