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한겨레> 자료사진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17일 북한 매체에 발표한 담화에는 우리 정부를 향한 북쪽의 불만이 강하게 드러난다. 거친 언사로 점철된 담화에는 남쪽 당국이 ①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묵인’하고, ②무엇보다 ‘한미 워킹그룹’에 막혀 대북제재 돌파에 실패했으며 ③9·19 군사합의에도 불구하고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진행하고 미국산 무기를 수입한 사실 등에 북한이 분노와 배신감을 느꼈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대북전단과 관련한 불만을 앞세웠다. 현 상황이 전단 살포를 “묵인한 남조선 당국 때문에 초래”됐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6·15 기념 연설에서 “사죄와 반성, 재발 방지에 대한 확고한 다짐”을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와대가 지난 11일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철저히 단속”하고 “위반 시 법에 따라 엄정히 대응할 것”을 예고했는데도 북한이 비난을 계속하는 것은 남쪽 정부가 합의에 어긋나는 대북전단 살포를 막지 못한 것을 반성하고 사과도 하라는 요구로 풀이된다.
이번 담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남쪽 정부가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 합의 내용을 이행하려 노력하지 않았고, 특히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제재를 돌파하지 못한 것을 꼬집는 내용이다. 김 부부장은 “도대체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남조선 당국이 이행해야 할 내용을 제대로 실행한 것이 한 조항이라도 있단 말인가. 사실 북남 사이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도 결패있게 내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김 부부장은 남북 합의 미이행의 책임을 미국이 제안한 ‘한미 워킹그룹’ 운영을 받아들인 남쪽에 돌렸다. “(미국이 요구한) ‘한미 실무그룹’이라는 것을 덥석 받아물고 사사건건 북남관계의 모든 문제를 백악관에 섬겨바쳐”왔다는 것이다. 김 부부장은 “지난 2년간 남조선 당국은 (중략) ‘제재의 틀 안에서’라는 전제조건을 절대적으로 덧붙여왔다”며 “북남관계가 미국의 농락물로 전락”한 것은 한국의 “친미사대와 굴종주의”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우리 정부는 평양 정상회담이 열린 뒤인 2018년 11월 한미 워킹그룹을 만들어 북한과의 협력 사업 등을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제재 면제 가능 여부를 타진해왔다. 이를 두고 북한은 물론 정부 안팎에서도 워킹그룹이 남북협력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정부가 이를 의식해서인지 2019년 5월 이후로 워킹그룹 개최 사실이나 결과 자료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 밖에도 김 부부장 담화에는 남쪽이 미국이 시키는 “전쟁놀이”를 하고 “첨단무기를 사가라고 하면 허둥지둥 천문학적 혈세”를 바쳤다면서 이 역시 남북합의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한미연합훈련과 미국산 무기 수입이 지상·해상·공중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1조)하기로 한 9·19 군사합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한-미는 2019년 전반·후반기에 각각 ‘동맹 19-1’훈련과 후반기 한미연합지휘소훈련을, 4월엔 2주 동안 한미연합공중훈련을 했다.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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